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Oct 17. 2020

95퍼센트의 상대




"넌 우리가 서로에게 몇 퍼센트 정도의 상대인 것 같아?"


어느 오후, 남자 친구와 대차게 싸우고는 이런 질문을 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던 그는 금세 몰입해 깊게 고민하 대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95퍼센트 정도의 상대가 아닐까?"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처음 남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난 내 운명의 상대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나 좋은 사람이에요-하고 쓰여있는 그의 서글서글한 인상도, 좋은 인상을 뛰어넘는 착한 성격이지만 어디 가서 바보 취급당할 걱정은 저 멀리 보내버리는 뚜렷한 주관도, 누구보다 이성적이면서도 작은 일에 쉽게 감동받고 글썽이는 감성적인 부분도. 쑥스러워 말하진 않았지만,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됐는지. 매일을 감격에 겨워 보냈다. 물론 내가 여자 친구라는 사실에 늘 감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었다.



남자 친구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 때는 일 년 정도 지난 후였다. 일 년 후의 나는 더 이상 매일을 감격하며 보내지도, 그의 작은 면모들을 보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하며 호들갑 떨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았던 이미지 때문일까? 그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나 우리 사이에 작은 다툼이 생길 때면, '아, 내가 너무 환상이 컸구나. 바보 같았어.' 하며 내 안에서 그를 계속 깎아내리고 실망하기를 거듭했다.



돌이켜보면 그 질문을 던졌던 때가 대차게 싸운 이후였던 것도, 싸우고 난 직후가 아니라 화해하는 중이었다는 것도 그런 내 생각들의 발로였던 것 같다. 나는 그와 싸우며 '아, 또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네? 너 정말 내 운명의 상대 맞아?' 하며 속으로 실망했고,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운명의 상대'라는 환상을 붙잡고 싶어 그가 그 말을 직접 해주길 바랐다. 싸운 후 서로에게 남겨진 미안함에 잔뜩 애정표현을 하던 분위기였으니 쉽게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얕은 계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후 돌아온 우리는 서로에게 100퍼센트의 상대가 아니라는 예상 밖의 대답 왠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왜 100퍼센트가 아니냐는 내 말에 웃으며 우리 지금 이렇게 싸웠는데 100퍼센트라고 생각하냐는 그의 농담 같은 말에 실은 그도 나와 같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보고 시작한 연애에서 단점을 볼 때마다 실망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텐데, 왜 다툼은 같이 해놓고 왜 나는 실망하면서 그는 날 여전히 완벽하게 생각할 거라고 쉬이 여긴 건지 부끄러워 그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남자 친구가 말했다.



"어쩌면 정말 완벽한 100퍼센트의 상대가 이 세상에 존재할지도 몰라. 그런데 이 넓은 지구에서 그 사람을 만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게 60대가 될지, 죽기 직전이 될지 모르고. 우리 100퍼센트 꼭 맞춘 듯한 상대는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랑할 수 있는 시기에 이만큼 잘 맞는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도 기적 같아. 채워지지 않는 5퍼센트 있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가능한 최선의 상대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처럼, 우리는 마음 깊숙한 어디 한 구석에서 100퍼센트의 상대를 꿈꾼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에이 사랑 같은 건 다 거짓말이야라고 말하면서도 운명적인 사람을 믿어왔다. 그래서 연애를 하게 되면 듣게 되는 온갖 미사여구들이 오그라들기는커녕 나를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그때도 너는 나의 100퍼센트의 상대라는 뻔한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내 100퍼센트의 상대가 아니라는 로맨스의 환상을 깨트리는 그의 말이, 왜인지 여태껏 들어왔던 어떤 말보다도 로맨틱하게 들렸다.



그 대화를 나눈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그 말을 생각한다. 서로가 가능한 최선의 상대임을 증명해주는 현실에서 가능한 최고의 숫자 95퍼센트. 가끔은 5퍼센트가 아쉽게 느껴지더라도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상대와 함께 있다는 것. 어쩌면 정말 꿈에서나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100퍼센트의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일보다도 소중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그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물어온다면 나도 그처럼 대답할 것 같다.



넌 나한테 95퍼센트의 상대고, 그래서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다고.







수카: 글을 쓰면서 저는 저 스스로에게 몇 퍼센트의 사람일지 계속 생각해봤어요. 더 정진해야겠습니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저장된 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