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Dec 16. 2020

가려진 세상

강화길의 '음복'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미처 보지 못했던 가게를 발견하는 날.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이상하리만치 한 순간에 깨닫게 되는 날. 살면서 존재하는 그런 날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큰아버지가 그쪽 상에는 자리가 부족하니까 '00 이가 이리로 와라'하고 남동생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남동생을 부르는 큰아버지를 바라보며 본 거실 중앙의 커다란 상. 어렸을 때부터 몇십 번을 보았던 그 상이 낯설게 보였다. 아니, 내가 저 상을 그전에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가?



남동생은 귀찮다는 듯 지금 앉은 상에서 밥을 먹겠다 했다. 그러자 큰아버지는 '그럼 ㅁㅁ이 와라'라며 내 동생보다 어린 친척 남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자리를 옮기는 친척 남동생의 옆에는 친척 언니와 큰어머니가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 떡국과 잡채, 전 등 명절 음식이 비좁은 식탁 안에 힘겹게 놓여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친척 남동생은 아빠와 친척 오빠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 상을 바라보았다. 그 상에는 집안의 유일한 어르신인 할머니를 제외하고, 남자만 앉아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거실과 부엌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이 작은 상에만 앉으라고 말한 적 없었다. 떡국이 담긴 국그릇을 건네주며 여기 앉으라고 했을 뿐이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다. 엄마와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는 음식 준비하느라 바쁘니 부엌과 가까운 상에서 먹는 거겠지라고 무심결에 생각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작은 부엌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들과 거실에 앉아서 고스톱을 치는 아빠와 그의 형제들을 보면서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째서 커다란 상과 좁은 상 아래 가려진 것을 보지 못했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자리가 부엌, 그들의 자리가 거실이라 생각했다. 우연이거나 선택일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정말 선택이었나? 큰아버지는 내게 커다란 상으로 올 거냐고 묻지 않았다. 남동생은 작은 상에 앉아있겠다고 대답했지만 내게는 대답할 기회가 없었다. 왜 엄마와 큰어머니는 늘 내게 국그릇을 건네며 '여기' 앉으라고 말했을까? 나는 큰아버지보다도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날들은 잊을만하면 찾아와 내게 가려진 세상을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 아래의 세상이 가려진 현실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던 날, 국그릇을 건네며 여기 앉으라던 그녀들의 말이 나를 향한 친절이었음을 알았다. 그녀들은 내가 갈 곳을 정해주며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분명 아무 말도 없었다면 나는 '넌 여기 말고 저기 앉아서 먹어'라는 말을 들었겠지. 그녀들은 예정된 거절의 경험을 막고 내 눈을 가렸다. 상이 성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한참을 나이가 들어서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부엌에서 정신없이 요리를 하던 그녀들의 최선이었겠지. 그 생각이 들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단지 슬플 뿐이었다.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에 수록된 「음복」을 읽고 쓴 에세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