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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Dec 13. 2020

방바닥에서 바라본 천장



근래 들어 나를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이 직업이 뭐냐고 묻는 상상을 종종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요가 선생님이 " 뭐하시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보통 이 상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사실대로 대학원생이라고 말해야 하나? 학기는 이미 끝났는데 대학원생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그럼 정규학기 끝나고 논문 쓰고 있는 대학원생이라고 풀어서 설명할까? 아니 근데 논문 안 쓰고 있잖아. 거짓말하면 안 되지. 그보다 이렇게까지 안 궁금할 것 같은데. 그냥 취준생이라고 말할까? 왠지 그것도 좀... 어디 취업하고 싶냐고 물으면 어떡해. 아 모르겠다. 무조건 백수라고 대답해야지. 사실 백수나 다름없으니까.'



이런 식이다. 재미없는 상상이다. 심지어 백이면 백 같은 전개에 같은 결론으로 끝난다. 심지어 실제로 아무도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지 않기에 쓸모도 없다.



내가 이 글의 첫 문장을 '하게 된다'로 마친 이유는 이 상상을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의에 가깝다고나 할까. 처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가볍게 넘겼다. 쓸모없는 생각을 하네? 하고. 그런데 자꾸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가 이상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돌이켜보니 이 상상을 하게 된 때는 늘 다른 사람들(주로 본업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쳤을 때였다. 그제야 내가 지금 나 자신을 정의 내릴 수 없어 불안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불안하다'는 자각이 들 때면 늘 자취방 바닥에 누워 바라보았던 천장이 떠오른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고 돌아왔던 해, 난 남은 학기를 마치기 위해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 사이에 있는 오래된 빌라의 원룸이었다. 길어야 일 년만 살 거라는 생각에 싼 곳을 찾아 들어간지라 그 방은 정말 좁았다. 게다가 당시 나는 돈이 굉장히 없을 때였다. 책상을 사는 돈이 아까워 이사 박스를 잘라 책상을 만들어 살았다. 박스 책상을 벽에 붙이고 남은 공간에 이불을 놓고 생활했다. 이불 옆 냉장고는 시도 때도 없이 삐-하고 귀를 찌르는 소리를 냈다. 냉장고 소리는 공용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윗집 아랫집 화장실 소리와 맞물려 훌륭한 합주를 해냈다.



그래도 처음에는 대학생 때 좁은 방에서 사는 게 뭐 대수냐 싶었다. 호주에서도 내가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서 지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내다 보니 작아도 커다란 거실이 있던 호주의 셰어하우스와 달리, 방문 하나 열 곳 없는 작은 원룸은 답답함의 정도가 달랐다. 집순이인 내가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휴학을 두 번이나 한탓에 원래도 얼마 없는 친구들도 이미 다 졸업하고 딱히 만날 사람이 없었다. 가족들은 고향에, 남자친구는 해외에 있었다. 그저 학교, 집, 학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몇 달을 살았다.



하지만 내 방은 공부를 하기에도, 밥을 먹기에도, 누워서 쉬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좁은 부엌에서 겨우 간단히 차려 먹고 나면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방바닥에 펴진 이불 위에 가만히 누워 몇 시간이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 보면 어쩐지 천장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가 이 집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워서도 끝과 끝이 보이는 이 좁은 천장이 내 미래는 아닐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벽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내 형편을 아는 그가 준비해준 여행이었다. 시원한 공기를 흠뻑 마시고 탁 트인 하늘을 잔뜩 바라본 후 돌아온 내 방은 여전히 작았다. 그리고 역시나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그 위로 내가 본 하늘이 겹쳐졌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보였다. 천장이 하늘처럼 점점 넓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 비록 지금은 이 작은 방에 누워있지만 내 미래는 다를 거야.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숨을 들이쉬자 방구석의 퀴퀴한 냄새가 아니라 시원한 바다 향기가 나는 듯도 했다. 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런 생각이 든 날 후로 내 방의 천장은 늘 하늘처럼 보였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후로 나는 천장을 통해 하늘을 두 번 정도만 더 보았다. 여행의 설렘과 감동이 옅어질수록 천장은 그냥 보통 천장으로 보였다. 한 자리에 누워서도 방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는 좁디좁은 천장. 하지만 그 날 후로 더 이상 천장은 좁아지지 않았고, 벽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 이 방에 갇혀서 죽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도 더 이상 할 필요 없었다.



그 원룸에서 나와 나는 다른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조금 더 컸던 그 원룸에서도 가끔 천장을 보게 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천장이 좁아지던 날들이 생각났지만 곧 넓은 하늘 같았던 천장이 같이 떠올라 무섭지 않았다. 그후로 나는 또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에서 난 더 이상 천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되는 날이면 가끔 그 천장이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불안이 처음이 아님에 안도한다. 난 누구인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무엇 하나 확신해서 말할 수 없어 대답을 고민하는 내 쓸모없는 상상에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는 천장을 덧그리며.






이북리더기를 살지 말지 몇달째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 갖고 있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사자!가 계획입니다만, 그럼 평생 못살 것 같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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