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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Feb 14. 2021

호상

평화의 기도



친할머니는 여느 할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친할머니는 연세가 많았다.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 전부터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증조할머니가 친할머니와 같은 나이셨다니 어쩌면 아빠도 엄마도 진심으로 그리 믿었을지도 모른다.  



친할머니는 굉장히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친할머니는 나를 늘 천주교 세례명으로 불렀다. "세실리아- 성당 열심히 나가고 있지?" 친할머니는 마르고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묻곤 했다. 사실 그게 할머니가 던지는 질문의 전부였다. 외할머니가 나를 보면 하는 학교는 잘 다니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하는 류의 질문을 그녀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기도 열심히 해야 천국 간다며 내가 옆에 있는데도 친할머니는 기도를 절대 멈추지 않았고, 몸이 아파 병원을 출근하듯 다녀도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고 미사에 나갔다.



그래서 나의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성당과 병원 그리고 큰 아빠 댁에 할머니가 쓰시던 작은 방 한 칸으로 수렴한다. 외할머니댁에 다면 외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왔냐며 버선발로 걸어 나왔지만, 친할머니는 어떤 손자가 와도 당신의 작은 방 한 칸에서 나오는 법 없었다. 외할머니는 한 상 가득 밥상을 차려주고도 귤도 먹고 떡도 먹으라며 바삐 움직이셨지만, 친할머니는 몸에 좋은 건 당신이 먹어야 한다며 백숙의 모든 닭다리를 당신 앞에 놓았다. 분명 친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런 할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친할머니가 엄마를 시집살이시켰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밉기도 했다. 그랬던 친할머니가 언제부터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언제부터 그래도 우리 할머니니까- 하며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안부 전화를 걸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밉기만 했던 아빠가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때였나.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힘이 빠져 더 이상 엄마에게 못되게 구는 걸 그만하실 때쯤이었을까. 아니면 결국 모두가 모실 수 없다고 결론내고 요양병원으로 가셨던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친할머니를 바라볼 때면 안타까웠다. 할머니는 많은 자식들을 두었지만 그 자식들은 모두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다. 차라리 돌아가시는 게 나을 거라는 말도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할머니가 절대 돌아가실 것 같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던 순간부터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셨고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했지만 큰 병도 크게 불편한 부분도 없었고, 무엇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기도를 하는 정신력이 할머니를 오래오래 살게 해 줄 것 같았다. 모두가 곧 돌아가실 거라 말했지만 할머니는 내 나이 29살이 되도록 돌아가시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100세를 한참 넘겨 살아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쇼에 장수 노인으로 언젠가 출연하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날 새벽의 부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미 몇 년을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아흔을 훌쩍 넘긴 연세셨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앉아 난 손님들이 호상이라 위로하고 그래, 잘 가셨지 대답하는 대화를 가끔 들을 수 있었다. 그래. 호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였다. 오래 앓다 돌아가시지도 않았으니 호상이라 말하기 모자람 없었다. 하지만 정말 호상인가. 죽음에 호상이 어디 있어, 다 같은 죽음인데. 정말 모두가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라 진심으로 믿어왔던 걸까. 이 정도 살았으면 좋은 삶이었다 하며 보내드려야 하나. 착잡했다. 하지만 다음 날 관 속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오열하는 아빠를 보며 어떤 마음으로 아빠가 우리 어머니는 곧 돌아가실 거라 말해왔는지 언뜻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자식들 모두가 진심으로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관 속으로 들어가기 전 할머니의 몸에 성수를 뿌렸다. 옅게 화장된 할머니의 차가운 볼에 손을 얹고 그녀의 평화를 빌었다. 그녀가 가는 곳이 천당으로 가는 길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장례식이 끝나고 회사에 갔다. 위로해 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하면 오래 사셨으니 괜찮다고, 호상이라고 말했다. 호상이 어딨어, 다 같은 죽음인데.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제 인생에 있던 첫 번째 죽음이었어요. 어렸을 땐 미워하기도 했지만 절대 돌아가실 것 같지 않은 분이셨는데, 더 자주 연락드릴 걸 후회돼요. 어떻게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빠도 걱정되고 이 모든 게 아직 벅차요. 그래도 좋은 곳으로 가셨겠죠?'


대답하고 싶은 마음속에 있는 모든 말을 삼키고 짧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호상이에요.





할머니, 부디 하느님의 곁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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