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이야기를 새롭게 직조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클라우스(Klaus, 2019)」

by 서방정

※ 영화 전반에 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전설은 때로 와전되고 뼈대만 남긴 채 재창작되기도 한다. 산타클로스 전설도 그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변모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3세기의 가톨릭 성인(聖人)으로서 선행을 베풀었던 대주교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빨간 옷의 노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구전 속 돌연변이가 있었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클라우스(Klaus)'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전설과 수많은 와전이 남긴 씨실과 날실을 적절히 직조한 이야기다. 산타클로스가 실은 깊은 산속에 사는 인간이며 선행과 선물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꿈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는, 하나의 동화처럼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유머와 통통 튀는 작화가 즐거움을 보장했고 아이들과 노인이 주체가 되는 만큼 소외계층과 노약자에 관한 나름의 고찰도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다. 영화의 배경을 관통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은 어른들의 닫힌 사고방식, 답습에 의한 반목과 대비되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개성 있고 인상적인 캐릭터


이 영화를 구성하는 주인공 제스퍼와 엘바, 클라우스의 인상적이었던 점을 위주로 간단히 논해보고 싶다.


제스퍼는 오지이자, 그에게는 유배지와 다름없던 '스미어스 렌스버그'에 남기로 한 용기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단순히 원래 살던 곳에서의 부와 안정을 포기한 그의 선택에서 용기를 본 것이 아니다. 제스퍼는 이전까지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전부였다. 언젠가 물려받게 될 우체국장 자리만 바라보며 자기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성취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는 건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엘바는 눈부신 사명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스미어스 렌스버그'에 발령받은 후 오직 탈출만을 꿈꾸며 물고기 배를 갈라 돈을 벌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무려 5년. 엘바는 그렇게 모은 돈 모두를 작은 희망에 걸었다. 비로소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다는 희망. 어떤 확신도 휴짓조각이 되곤 하는 그곳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 자체를 쏟아부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진정한 직업 정신과 헌신적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클라우스는 사랑으로 점철된 인물이다. 그에게는 아내를 향한 사랑, 아이를 향한 열망이 있었다. 그 오랜 세월 그리움으로 탈바꿈한 사랑을 쥐고 생전에 아내가 좋아했던 새집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클라우스의 모습에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슬픈 원동력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 내내 클라우스는 바람의 지시에 이끌리는데, 이는 결국 바람이 된 그의 아내가 아니었나 한다.




훌륭한 떡밥 회수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산타클로스 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다.

첫 번째, 굴뚝으로 들어가 선물을 준다.
두 번째, 나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
세 번째,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나타난다.

영화에서는 익히 알려진 이 사실(?) 세 가지를 아주 재치 있게 풀어냈다. 지속되는 싸움으로 스미어스 렌스버그에 있는 집들은 벽에 방어용 무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피해 선물을 전해주려면 굴뚝으로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제스퍼는 손수 날아가 굴뚝을 통한 선물 증정을 실행한다.


또한 제스퍼는 우체부 부임 초반 자신을 비웃고 괴롭히던 아이에게는 선물 대신 석탄을 주면서 "클라우스 씨는 전부 알고 있으며,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결국 그 뉴스는 마을 어린이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져 보이지 않는 선행을 하고 소원을 비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썰매에 관한 일화가 가장 흥미로운데, 제스퍼와 클라우스가 선물을 나르던 운송수단은 원래 당나귀가 끄는 마차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선물의 양이 늘어나니 당나귀 한 마리가 끌기엔 너무 무거워졌고 클라우스는 순록을 길들여 대여섯 마리의 순록으로 하여금 마차를 끌게 했다. 이 마차는 우여곡절 끝에 바퀴를 잃어 썰매가 되고 언덕 끝에서 스키점프처럼 날아오르게 된다. 그걸 목격한 어린이가 퍼뜨린 소문으로 클라우스는 전설적 인물(어쩌면 신)이 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의 파편을 인물 간의 맥락으로써 기운 재치가 대단했다.




선한 영향력


영화 속 클라우스가 선물한 장난감은 아이들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 결국 부모들마저 맹목적이었던 미움과 증오를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죽음의 도시 같았던 스미어스 렌스버그에 활기가 돌고 마을의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선한 행동은 또 다른 선한 행동을 낳는다."


이 대사는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주로 제스퍼의 입에서 반복된다. 애초에 제스퍼가 그 말을 생각해낸 계기는 편지 6천 통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한 위선이었겠으나,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며 그의 마음속에서도 점차 진심으로 번진다. 제스퍼의 성장과 깨달음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마르구라는 사미족 어린이는 제스퍼뿐만 아니라 엘바와도 교류하는 비중 있는 캐릭터인데, 이 마르구를 대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태도가 내게는 매우 시혜적으로 보였다.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영어와 알파벳을 가르치는 모습은 내게 '교화'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다수민족의 문화에 편입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물론 영화 내에서 인물들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시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편지를 쓰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등장한 것이지만, 결국 다수 혹은 선진사회의 문화에 어울려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서구중심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클라우스'는 크리스마스마다 이유 모를 선물을 주는 전설 속 산타클로스에 서사를 부여하면서 그에게도 나름의 인생이 있으며 보편적 인간의 감성이 깃들어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따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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