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MU(One Source Multi Use)의 한계와 그에 대한 비판
다매체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론칭되고 수천 개의 신작이 등록되는 시대, 그야말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화두로 떠오른 개념이 있다. 바로 'OSMU'다. 'OSMU'는 One Source Multi Use의 약자로, 하나의 스토리 콘텐츠가 다른 매체를 통해 제작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 굿즈 등으로 제작되어 재판매되는 것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창작자 혹은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OSMU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 품이 덜 들고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최근 과하게 이루어지는 OSMU를 반대한다. 그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보도록 하겠다.
아무리 잘 각색한다고 한들, 작품을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주제를 해치게 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그 매체를 선정한 이유는 오직 그 매체만이 작품의 주제와 맛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로써 살아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영화로 구현되는 것이 최선인 경우가 있다. 무분별한 OSMU는 작품의 본질을 왜곡하고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그럼 작품을 아예 각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OSMU는 콘텐츠의 스토리와 캐릭터 등의 요소를 대부분 가져와 재구현하는 것으로, 모티브를 따와 각색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재나 주제는 얼마든지 재가공할 수 있으며, 그것이 문학의 본질이다.
또한 OSMU는 새로운 작품의 자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기존에 흥행했던 작품이라는 이유로 여러 채널을 통해 방영하고 방영하고 방영한다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작품들은 제작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콘텐츠 산업은 돈을 위해, 돈에 의해 굴러간다. 이익의 추구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려면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발굴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OSMU는 창작자의 게으름을 강화한다. 이게 무슨 극단적이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냐고 할 수 있다. 각색 좀 했다고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러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지 않고 이미 흥행한 작품의 후광으로 성공하겠다는 건 진정한 창작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독창성만이 경쟁력이다.
이야기 하나만 잘 쓰면 된다고 하지만, 채널 수가 급증하고 콘텐츠가 무한으로 쏟아져나오는 만큼 성공하기 힘든 시대다. 그러나 신용카드 돌려막기처럼 '이야기 돌려막기'로 유지하는 산업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