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해 준 것들

by 나를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견디질 못하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첫날 친구집에 가서 하룻밤을 잤다. 1994년 당시 친구 집도, 형편이 어려워 좁은 방에서 함께 자며 친구에게 내심 미안했다.


친구는 학교에 다니면서 엄마의 과일 가게 장사를 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는 겉으론 씩씩해 보여도 아픔이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갈 곳도 없이 친구 집을 나왔다.


부산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났다. 20살 여대생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20살까지 살면서 내가 유일하게 나를 책임져야 했던 그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릉역에 내려서 무작정 경포대 해수욕장을 갔다. 해변을 계속 걷다가 어둠이 내려앉자, 무서움이 몰려와 근처 숙소로 들어가서 하룻밤을 잤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좋아서 아무런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강릉에서 묵었던 그 하루를 살면서 꺼내보게 된다.


어린 마음에 숨 쉴 곳이 없어서 떠났던 그 하루가 나에게는 가슴 아픈 하루지만, 내가 유일하게 나로 살았던 하루이기에 자꾸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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