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엇일까요?" 스님이 청중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스님은 웃으시면서 "삶은 달걀"이라고 해 많은 이들이 크게 웃었다.
나도 영상을 보면서 스님의 위트에 웃었지만 잠시 후 더 깊은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삶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 이 질문은 '자식의 삶'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십 대까지만 해도 나는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생은 노력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각자 인생의 숙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아이를 낳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백 프로 맞지는 않지만 나는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부모의 자식에 대한 걱정은 고독하고 처절하다.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고 저절로 수행이 된다.
나의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종이 접기나 그림에 재능이 보였다. 아이 자신도 미술에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을 거라 확신했다.
대학교 입학 후 전공이 맞지 않음을 느끼면서도 2년 동안 버티며 다녔다.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계속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닫고 대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다.
자식을 믿지만 조급증이 나고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부모로서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은 힘든 고뇌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식이 자기 길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면서도,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자식의 앞날이 아스팔트 길이라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의 인생 길이 진흙탕 길이라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삶은 달걀"을 떠올려 본다. 반숙은 빨리 익고 부드럽지만 비릿한 맛이 난다. 완숙은 노른자가 흐를 일은 없지만 퍽퍽하다.
우리의 삶도, 가보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는다. 우리 삶은 반숙이냐 완숙이냐의 선택처럼, 무수한 기로에 놓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놓인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은 나와 주변인들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식 인생에 작은 등불이 되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비추며, 나의 길도 묵묵히 걸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