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by 슈기씨

‘“암을 삶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발견하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삶을 고쳐야 암을 고칩니다” 저의 조언에 대부분의 환자는 수긍합니다. 만약 예전의 생활 습관이 잘못됐다면 완전히 거꾸로 바꿔야 합니다. 암을 불러들이는 습관에서 암을 내보내는 습관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함부로 한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보완통합의학박사 이병욱 의사의 뼈 때리는 조언이 나를 울렸다.




다시 돌아온 겨울은 여전히 백수였지만 작년처럼 마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추운 날씨를 피해 실내에 오래도록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도서관으로 무작정 향했다.

갑상선 암과 관련된 책들을 모두 찾아 읽었다. 집에서는 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에서 관련 논문들을 찾아봤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것들이 생각보다 없었다.

나는 아주 초기에 암을 발견하였고 전이가 없었기에 갑상선의 반을 절제하여 암을 완전히 도려내는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나는, 갑상선 암 환자들 중에서 좋은 케이스에 속해서 자료가 빈약했다.

하지만 암 수술 이후의 상황은 여러모로 좋은 여건이 아니었기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범위를 넓혀 암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을 읽다가 이병욱 박사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박사가 겪은 암 환자들의 삶이 그간 살아온 내 삶과 많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맏딸에서 맏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욕구는 늘 뒷전이었던......

나는 나 자신에게는 너그럽지 않은 사람이었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라고 쓰인 대목에서는 오열을 했었다.)

누군가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지 못했던 삶과 이별하고, 좋아하고 하고픈 것을 하는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니 ‘무언가 배우는 것’과 ‘그것을 써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배움은 경제적 수익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제는 배우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을교육활동가 양성과정을 신청해 8주 동안 공예분야에 대해 배웠는데 ’아! 나는 역시 만들기 똥손이구나’ 만 알게 되었다.

그다음엔 MBTI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던 분야라 그런지 너무 재밌었다.

‘역시 내 스타일이야!’라며 다음 교육도 신청을 했다.

마을교육활동가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만난 어떤 강사가 마을 공동체를 꾸리고 싶은데 사람이 없다는 넋두리에 사무담당을 해 주겠다 제안을 했다.

돈 안 되는 일이지만 그저 하고픈 일이었다.

강사가 가지고 있는 인력풀에서 사람을 모아 비영리 법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구청에서 공모하는 마을 공동체 사업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예산을 받았다.

강사가 운영하는 공방에서 다양한 공예프로그램으로 공동체 프로그램 기획을 했는데 그중 MBTI 강의도 하루 넣었다.

이제 막 배우는 시점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일은 예전의 나 같으면 절대 안 할 일이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갑상선 암에 걸리기 전엔 직장을 다니며 집안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고 공부를 했었는데 지금 하는 활동들은 예전의 1/4 정도인데도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났다.

남겨둔 갑상선이 제 기능을 못해 갑상선 호르몬을 약으로 보충해 주었는데, 나에게 맞는 용량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부 활동을 하고 오면 며칠 집에서 푹 쉬었고, 짬짬이 낮잠도 잤다.

그러는 동안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청소년 상담사 전문자격시험에 응시하는 것이었다.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은 월 2회만 진행하는지라 ‘노니 뭐 해 공부나 하지 뭐!‘라며 필기시험 서류를 넣었다.

그리고 짬짬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구들을 챙겨 보내고 나면 교재를 챙겨 도서관으로 갔다.

일하며 공부할 때 ‘그저 공부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던 것을 지금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

필기 준비를 하면서 MBTI 공부도 전문 강사과정까지 이수하게 되었다.

역시 나는 배우는 것이 너무 즐거운 사람이었다.

필기 교재 1 회독을 끝내고 기출문제집을 풀어보았는데 의외로 쉽게 풀렸다.

‘어랏? 잘하면 붙겠는데?’

시험이나 한번 쳐보려던 건데 합격 가능성이 보이니 공부에 더 탄력이 붙었다.

체력이 달려 집에서 드러눕던 시간들도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덕인지 필기에 합격하여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은 ‘상담의 실제 사례에서 내가 어떻게 상담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감정에 과하게 몰입되었다.

공부를 위해 타인의 사례를 읽기만 했는데도 감정 전이가 되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왜 그러셨을까?’

‘나는 내 자녀에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들이 집중력을 방해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내가 먼저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인지 상담가의 조언에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갑상선 호르몬이 감정에 영양을 주는 호르몬이기에 그 부분은 약물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는 게 감정전이로 힘든 것이지 공부하는 그 자체로는 힘들지 않았기에 면접 준비를 계속하여 결국 면접도 합격을 했다.

그저 하고 싶어 시작했던 청소년 상담사 공부와 MBTI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나의 성향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인류애를 발휘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청소년 상담사 시험 합격을 통해 인류애가 목표가 되면 역량을 더 잘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지 길이 보였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보내는 사이 다시 겨울이 왔다.

취업동향을 들여다보던 워크넷에 노인복지기관의 시간제 일자리 구인 공고가 났다.

최근 알게 된 나의 성향에도 맞는 일이면서 현재의 체력으로 안성맞춤인 일자리였기에 입사지원을 하고 합격하여 올해 1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평균 15명의 어르신을 만나 뵙고 그들의 안부를 여쭙고 안녕을 기원하는 일은 즐겁고 보람차다.

이른 오후에 퇴근해 낮잠을 자는 시간과, 저녁을 먹고 잠들 때까지 내가 하고픈 것을 느긋하게 하는 시간들 또한 매일이 행복이다.

물론 지금도 체력에 부쳐 가끔 병이 나기도 하지만 ‘워라밸’ 덕에 활력이 생겼다.

새로운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이젠 뭘 또 배워 볼까?하던 차에, 브런치 작가 도전 프로젝트를 통해 은퇴 후에나 시작하려던 글쓰기 계획을 앞당기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근무를 끝내고 낮잠 한숨 자고 저녁 챙겨 먹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만약 암 수술 하나로 끝났었다면, 나는 지금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또 나에게 너그럽지 않았던 삶으로 돌아갔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

이런 삶을 살게 해 주려고 그 시련들이 있었나 보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그럴싸한 이유로 나에게는 암 하나로 빈약했던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엄만 꿈이 뭐였어?

어제, 저녁을 먹다가 딸이 드라마 대사를 따라 하며 나에게 물었다.

“응, 엄마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

고등학교 때 어쭙잖은 솜씨로 단편 소설을 하나 썼다가 친구들에게 엄청 난 호응을 받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뜻이 있는 곳에 결국, 길이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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