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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기씨 Jul 20. 2024

나는 아미다.

“파이어~~~어!! 파이어어어어어~~!! 

주문을 걸 듯이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소리에 가족들 속에 불이 꽤 탔을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의 나는 좀, 미쳐 있었다. 병원에서 정해준 수술날짜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온 대학병원에서 3개월 뒤로 수술 날짜를 잡아 주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부터 피로증상이 조금씩 있었는데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인한 근육통으로 여기고 진통제를 먹었었다.

그럼에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갑상선 검사를 한 터였다.

진단을 받은 이후엔 심리적 문제 때문인지 업무가 더 버겁게 느껴져 결국 퇴사 결정을 내렸다.

퇴사하려면 가족에게 암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전에 할머니를 암으로 보낸 아이에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하는 상상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미룰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날을 잡고 가족에게 말했다.

“나 갑상선 암 이래... 며칠 전에 진단받았어, 그래서 그런지 몸도 피곤하고 병원도 다니고 해야 해서 나 일 그만두고 좀 쉬려고...”

아이의 반응부터 살폈다.

아이는 조금 놀라나 싶더니 눈시울이 빨개져 있는 나를 보곤 시선을 내려 내손을 가만히 잡았다.

남편은 전이가 된 건지 크기는 얼마나 큰지 등 몇 가지 물어보더니 수술 날짜를 물어보곤 ‘전이가 없어야 할 텐데...’ 혼잣말을 했다.

‘시어머니 효과인가?’ 식구들의 덤덤한 반응에 며칠을 고민하며 운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퇴사를 한 후,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해도 되나 싶더니 며칠 지나니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곧바로 적응을 했다.

가족들은 늦게까지 자는 나를 굳이 깨우지 않았고, 집안일이 밀려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어질러져 있는 것들에 스트레스받았을 텐데 ‘몰라 나 피곤해! 내버려 두니 오히려 식구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운동한답시고 밖에서 걷고 오면 오히려 몸살이 나 며칠씩 드러눕는 시간들이 반복이 되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 외출을 줄이게 되니 점점 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할 만한 일중에 가장 시간이 잘 가는 일에는 역시 미디어 시청만 한 게 없었다.

처음엔 밀린 드라마를 봤다. 이내 질려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봤다. 그것도 좀 지루해져 그간 관심 가지지 않았던 유튜브 세상으로 들어갔다.

평소 보고 싶었던 공연들을 검색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뮤지컬, 발레, 현대무용 등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깊이깊이 이끌었다.

그렇게 이끄는 대로 가다 한 소년이 실루엣이 드러나는 흰 옷을 입고 흰 천 하나로 무용을 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춤사위가 너무 우아했다. 그 소년은 BTS 지민이었다.

’ 아이돌이 이렇게나 우아하게 춤을 춘다고?!?!?’ 충격을 먹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아이돌은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노래하는 척 좀 하고, 춤 좀 추는 척하는 애들 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지민의 현대무용이 그것을 깨 주었다.

그렇게 나는 또 알고리즘에 이끌려 지민의 영상을 찾아보고 다른 멤버들의 영상까지 접하며 멤버 하나하나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BTS의 각 방송사 음악방송 모음과 연말공연 모음을 보고 자체 콘텐츠들도 찾아보았다.

멤버별 커뮤니티에서 정보들을 수집하고 소통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 댓글을 꼼꼼히 읽어 보기도 했는데, 외국의 70대 팬이 뒤늦게 BTS를 만나 행복하다는 댓글이 있었고 그 아래로 60대, 50대, 40대 나이 인증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래, 나도 BTS를 익히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같이 일하던 직장동료가 딸아이 대신 콘서트 예매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BTS 콘서트였다.

‘연예인 쫓아다니는 걸 말려도 모자랄 판에 콘서트 표를 끊어준다고? 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그때의 그 동료를 부러워하는 입장이 되었다.(그 동료는 딸아이 혼자 보낼 수 없어 같이 갔었다고 했다!!)     




진단받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던 12월 31일은 진료를 가는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 가는 것 자체에서부터 거부감이 올 일이었는데 이날만큼은 며칠 전부터 설렜었다.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 ‘뷔’의 중국 팬들이 생일 포토존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포토존으로 열심히 달려갔다.

괜한 쑥스러움에 조금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다 사람들 없을 때 후딱 가서 포토존을 여러 각도로 찍어왔다.

병원 다녀와서 신나 있는 나를 보고 딸아이가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었다.

 BTS 영상을 볼 때마다 같이 봐주거나 영상에 대해 설명해 주는 딸이기에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딸이 말했다.

“엄마 이렇게 신나 보이는 거 오랜만이에요!     




그즈음 남편의 사업이 바빠져,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어머님 집에서 출퇴근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눈치 안 보고 열심히 덕질에 매진했다.

왜 이제야 BTS를 알게 되었을까 후회도 되었지만 앞으로 볼 영상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행복하기도 했었다.

잠에서 깨어 잠이 들 때까지 영상을 보다가 살림을 하고, 영상을 보다가 식사 준비를 하고, 영상을 보면서 식사를 했다.

그렇게 과거 영상들을 보며 즐거운 하루들을 보내던 어느 날, BTS가 서울에서 오프라인 콘서트를 한다는 공지가 떴다.

날짜는 2022년 3월 10일. 그다음 날이 나의 수술일 이었다.

콘서트장에 직접 오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도 해준다고 한다.

‘어머, 이건 무조건 질러야 해!’ 결제를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수술 전날 병실에 드러누워 생애 최초 BTS 콘서트를 온라인 생중계로 즐겼다.


“니 멋대로 살아~ 어차피 네 거야 애쓰지 좀 말아져도 괜찮아~ Errbody say 라라라라라 say 라라라라 손을 들어 소리 질러 Burn it up 불타오르네!   


내일 있을 수술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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