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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기씨 Jul 14. 2024

3. 아버지의 위로는 엄마의 화를 촉발했다.

“니네 아빠는 왜 그런대니~~"

엄마의 짜증이 무선을 타고 귀에 꽂혔다. 

아버지의 잘못을 질타하고 싶을 때 엄마는 '니네 아빠'라는 표현을 쓴다.

'아,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진단받던 날로 다시 돌아갔다. 

'내가 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어제 남겨 둔 수술 전 검사를 하러 병원으로 가는 내내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한판 붙어보자'는 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제대로 붙어 이기려면 상대를 잘 알아야 했기에 병원에서 대기하는 짬짬이 지인에게 전화를 해 조언을 구했다. 

간호사 일을 하는 지인은 'OO병원에서 수술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 고 권해주었다. 

신장이식 경험이 있는 지인은. '내 몸 여는 건데 이왕이면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이후에도 추적관찰 해야 하니 큰 병원으로 가는 게 낫다' 고 조언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바로 구글 플레이를 실행하여 검색어를 입력했다.

'세브란스'

대학병원에서 유명한 교수는 초진만 2~3개월이 걸리기에 나는 가장 빠르게 초진 할 수 있는 교수님을 선택해 진료 예약 버튼을 눌렀다. 

유명하진 않아도 지금 병원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하니 전쟁터에 나갈 든든한 무기가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몸은 평소처럼 집안일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내가 왜?'  

'건강관리도 엄청 신경 썼는데 내가 왜 암이냐고!' 

'암은 가족력이 있어야는 거 아니야?' 

'혹시 내가 모르는 가족력이 있나?' 라는 생각들로 다시 헤집어졌다.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야 머릿속이 진정될 것 같아 결국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아부지~ 혹시, 우리 친가집 조상중에 암 걸리신 분 있어요? 없어요? 그럼 외갓집 조상은요?" 

당연히 없었다. 나의 가족력은 뇌혈관질환이라는 내가 아는 정보에서 달라질 게 없었다.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아버지 말씀에 암 진단받은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이고~"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시더니 

"갑상선은 효자암이라 카드라~ 마이 걱정 할 필요 읍따. 그라고 니 암보험 들어 놨제?"

그래, 나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갑상선암은 효자암이다' 아버지 말씀에 동의를 하며 수술하면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과 큰 병원 예약도 해놨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그리고 엄마에겐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며칠 동안 평소처럼 지냈다. 

출근 안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길 가족에게는 그 당시 겪고 있던 갱년기증상 때문에 검사도 하고 며칠 쉴 거라고 말했다. 

가끔은 울컥거림이 올라오긴 했었지만 모든 것을 갱년기 증상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짬짬이 갑상선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었다. 

나보다 젊은 사람도 있고, 전이된 사람도 있고, 재발한 사람도 있었다. 전이된 사람들이 쓴, 수술 후 항암 하는 과정과 식단조절 고통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이젠 전이만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카페의 글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수술에 대한 걱정도 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들이 많다는 데 위로도 되고 나는 수술만 해도 되겠구나 싶어 안심도 되는, 여러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는 이상한 하루들이 지나고 세브란스 초진일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듯이 나와서 신촌으로 향했다. 

인천 1호선을 타고 공항철도로 환승해 다시 초록버스로 환승하면 병원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횡단보도 파란불을 기다리며 올려다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연세암병원'

처음 온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간판이 크게 보였다. 

시어머니의 보호자로 방문할 땐 무심히 흘렸던 간판이 내 진료를 위해 방문하니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눈앞을 스치는 사람들은 마치 의학 드라마 배경처럼 무심히 분주했다. 

어머님 보호자로 왔을 땐 그들이 안쓰러운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내가 그 안쓰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안내되었다. 

교수님은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고 내가 의자에 앉자 모니터를 보여주며 이전병원에서 가져온 초음파 영상을 마우스로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에 결절이 보이고요, 오른쪽에도 석회화된 게 보이네요, 오른쪽에 세침검사를 한번 할께요 결과보고 반 절제를 할지 전 절제를 할지, 결정하자고요."

"왼쪽에만 있는 게 아니고 오른쪽에도 있다고요? 그럼 전이가 됐을 수도 있겠네요?"

"전이는 검사를 해봐야 알고요..." 

전이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교수님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당장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밖에 나가서 간호사와 다음 스케줄 예약하시고 검사 안내도 받고 가세요"라는 말이 또렷이 귀에 들어왔다. 그러고선 또 떠밀리듯이 병실을 나왔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라고? 그래, 그렇긴 하지... 효자암이니 죽고 사는 문제 아니겠지...' 

다들 덤덤히 말하니 또 덤덤해져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 듣고 검사 예약을 하고 덤덤히 –물론, 울컥거림은 갱년기 증상으로 치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한테 얘기 다 들었어~~ 이게 무슨 일이니! 갑자기 무슨 암 이래니~~~"

엄마의 목소리는 그러데이션으로 높아졌다.

"아이고... 내가 말한다 했는데 아버지가 벌써 말씀 하..."

"그리고!! 니네 아빠는 왜 그런대니~~~ 너한테 암이라는 소리 듣고 효자암이라고 말해줬다고 그러는 거야~~ 아니~~ 암에 효자가 어딨 냐고~~~ 그걸 지금 잘했다고 하는 소리냐고 내가 뭐라 했잖아~~~!!"

엄마의 그러데이션 화가 마음에 내려앉자 마음이 쿵쾅이며 소리를 냈다.

'그래 암이야 나~~ 암 걸린 것도 억울한데 착한 암이 어딨 냐고 암이 착한 게 어딨 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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