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하루를 길게 보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내어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고 작은집 큰집 가족들과 만난 후 우리는 선운사로 달렸갔다. 셋째 사위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사위와 꽃 무릇 구경을 해 볼까 늘 벼르던 참이었다. 살짝 늦은 감은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행할 여건은 못되여 지금까지 미루어 왔다. 추석 명절에 군산 내려온 김에 이번에는 기필코 선운사를 가리라 벼르던 참이었다.
세쨋 사위는 나와 정서가 맞는 사람이다. 둘이 대화를 할 때면 재미있다.
선운사는 군산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으면 도착하는 그리 먼 곳은 아니다. 선운사의 꽃 무릇도 장관이지만 나는 선운사를 좋아한다. 다른 사찰보다 오래된 수령의 나무 숲이 좋기도 하지만 동백꽃이 피고 떨어질 때 꽃이 무더기로 떨어져 있는 누워 있는 꽃을 볼 때면 마음이 아려와 선운사를 찾고 싶어 진다. 아픔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의 끝은 사랑이다.
동백꽃이 필 즈음에는 송창식 가수의 선운사 노래를 듣고 있을 양이면
그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선운사 송창식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송창식 가수의 노래 선운사 가사 일부다.
이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있으면 선운사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동백꽃을 보려고.
어느 시인은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맞다"라는 말이 내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나는 꽃 무릇이 져 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내내 긴장을 하면서 마음은 꽃무릇이 핀 곳 선운사로 달려간다.
점심때가 넘었으니 점심을 먹어야 했다. 선운사에 오면 가장 유명한 음식은 풍천장어다. 지난해 동생과 같이 왔던 집을 남편은 찾으려나 했는데 곧장 그 집을 찾아낸다. 집도 깨끗하고 음식도 깔끔해서 그 집을 잊지 못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 남편은 복분자 막걸리 한잔에 "좋다" 소리를 연달아하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행복이란 별개 아닌 듯하다.
점심 후 우리는 꽃 무릇 구경을 했다. 입구는 아직 꽃이 싱싱해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걸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꽃 무릇의 싱싱한 모습은 약간 시들고 싱싱하지 않다. 그렇지만 아쉬운 데로 아직은 구경할만하다. 꽃무릇 길을 명절이라서 가족과 친구와 구경온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려는 듯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일 주문을 지난 오른쪽으로 꽃길을 걷다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보였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삼나무 숲 안쪽에 고즈넉한 곳에 부도밭이 있었다. 부도밭은 대부분 사찰 마당에 이르기 전에 위치한다. 부도 밭은 그 절을 이끌었던 고승을 기리는 비석과 부도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누구도 범치 못할 경건한 기운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 뒤에는 동백나무 숲도 보인다.
바쁘지 않게 천천히 걸어 절 마당에 들어서 사찰 안에 있는 전각들을 둘러본 후 어느 곳을 가나 시원한 마실 물이 흐르는 물로 목을 축이고 한참을 배롱나무 아래 앉아 절의 아늑함에 마음 한편이 그윽 해진다.
선운사는 웅장하지도 않고 요사체도 산자락 아래 사뿐히 앉아 있어 기운이 조용함을 느낀다.
나는 매번 마음으로 생각했던 숙제 하나를 풀어낸 느낌이다. 세쨋딸과 사위 손자까지 명절 부모 외롭지 않도록 찾아와 같이 해 준 마음 고맙고 따사롭다. 다른 때 같으면 추석에 큰집에서 제사를 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부엌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을 텐데, 하나를 버리면 또 다른 하나가 채워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진리라는 것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