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둥근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는 추석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라 한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기까지 땀 흘려 가꾸었던 모든 농산물과 과일들은 수확을 기다린다. 추석은 들녘 논의 벼들이 노랗게 익어 가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하고 마음이 가득해 온다.
추석에는 한 동안 소원했던 고향 친척들도 만나고 특히 가족들과 만나 정을 나누고 회포를 푸는 명절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가족들의 응원에 기를 얻고 또 세상 속으로 나가 힘든 삶을 살아가곤 했다. 그 모습이 오랜 우리 민족들의 명절 풍습이었다. 우리 모두는 아무리 힘들어도 조상에게 간단한 차례상을 차려 놓고 조상에 대한 예를 지내 왔다.
세월이 흐르고 생활은 많이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풍습은 자꾸 퇴색되어 가는 요즈음 현실을 볼 때 마음 한 편이 쓸쓸해 온다.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와는 다르다. 예전처럼 힘든 삶을 살지 않으려 회피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삶의 형태도 변하여 간다. 제사를 지내는 일이 세대 간 갈등이 있다 보니 제사를 안 지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우리 시댁도 예외는 아니다. 제사 지내는 걸 종교의식처럼 중요하게 여겨 왔던 시댁인데 큰집 형님이 몸이 아파 요양원에 가시게 되고 며느리는 명절 제사를 못 지내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찌할 건가, 생각이 다르다고 젊은 세대와 다툴 수는 없는 일이다. 시대의 변화를 어찌 탓하랴, 마음은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은 형제가 삼 형제다. 시부모님은 큰 아들인 시숙님에게 집과 논 밭을 거의 다 물려주셨다. 그때 시아버님은 몸이 아파도 병원도 안 다니셨다. 의료보험이 없는 그때는 병원비가 많이 나오던 때였다. 자식들이 권해도 절대로 병원을 가시지 않으셨다 한다. 누워 지낼 정도는 아니셨기 때문일 것이다. 시아버님은 70대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시아버지님 목숨값과 바꾼 전답 유산은 고스란히 큰 아들 몫이었다. 예전에는 큰 아들만 챙기던 때라 그런가 보다 하면서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제 와서 잘못된 일 시비를 가리려면 갈등을 하게 되고 서로의 관계만 나쁘게 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형제애고 사람이다.
어찌 됐든 남편 형제는 사이가 좋다. 동서들도 마찬가지다. 동생들은 형님이 어떤 결정을 하던 이의를 달지 않고 형님의견을 존중해 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나는 결혼 55년 차다. 그 수많은 세월을 제사를 일 년이면 명절 제사까지 6번을 지내왔다. 결혼 후 한 번도 제사를 빼놓지 않고 큰댁에 가서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지내왔다. 제사 때마다 성의껏 제사비용도 전해 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금전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리는 명절 제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난 추석부터 전주에 살고 있는 작은 집과 우리 집은 부모님 좋아하시는 음식을 간단히 준비하고 산소에 가서 시 부모님을 추억하며 간단히 제사를 지낸다. 명절이 돌아오니 예전 큰댁에 모여 추석이 돌아오면 거실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던 그날들의 기억들이 살아나 마음이 쓸쓸해 온다.
어찌 되었든 몸이 아프신 형님도 집안 가족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한신 점 고맙고 감사하다. 몸이 아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계시니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명절 때 삼 형제 자녀들 까지 밥 먹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 일도 멈추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그 무거운 멍에를 지지 않으려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인간사 모든 일은 세월 따라 변한다. 어쩔 것인가,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지 예전 젊어서는 큰댁에 다니는 것이 때론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러한 시간들이 얼마나 훈훈하고 따뜻했는지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예전과는 다르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살려하고 이웃과 친척들과도 왕래도 줄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사촌 얼굴도 모르고 사는 날이 올지 모를 일이다.
오늘 아침 서둘러 소고기 뭇국을 끓여 아침을 먹고 사위와 딸 손자 둘을 데리고 산소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 집 가족 6명 작은 집 가족 11명 조상들 묘가 있는 산소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평소에 사람 좋아하시던 시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모두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고 이렇게 모여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어제나 그러하듯 시동생은 어린 손자 들고 다른 가족들에게 산소에 와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의 의미에 대하여 말을 한다. 우리의 뿌리와 그분들의 희생으로 살고 있으니 그 마을을 새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산소를 찾아온 의미를 이야기해 준다. 나는 그런 시동생의 의지와 자녀들에게 정신 교육이 흐뭇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그 의미가 가슴에 새겨 볼 일이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고 지난 추억을 소환하고 우리 조상들에 대한 감사와 부모님을 추억한다. 오늘이 가고 날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세월을 떠나보내면서 사뭇 궁금해 온다. 아, 옛날이여. 지난날 같이 했던 그날들이 그립고 눈물겹다. 앞으로 내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해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