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논개 시 퍼포먼스 대회 참가기
18일, 전북 장수에서 '논개 시 낭송 퍼포먼스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내가 속한 '한시예' 팀은 15명은 우리 지역 예술의 전당 주차장에서 모여 몇 사람씩 나누어 차를 타고 군산에서 장수로 출발 했다. 햇살이 맑은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황금빛 들녘이 마치 노란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답다.
눈에 보이는 가을 풍경은 곧 있으면 사라질 것이다. 가을 억새도 보이고 코스모스 꽃도 보인다. 한 계절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 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는 마치 여행 가는 기분이다. 좋은 사람과의 시간은 느긋하고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소녀들처럼 함께 가을 노래도 같이 부른다. 이런 날은 나이도 잊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 풍경
두 달 전, 연출가님의 대본이 나온 뒤 논개 시극을 무려 두 달 동안 같이 연습해 왔다. 낮 시간에는 모두 직장에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각기 바쁜 시간을 쪼개며 한 명도 싫다고 불편해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면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도 모여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기운이 모이게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었나
우리 한시예 공연을 마치고 인사하는 장면 시극이 끝난 뒤 인사 장면
지난 두 달,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을 해 왔다. 공연 연습시간에는 언제나 음식과 간식거리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유난히 음식을 잘 챙겨 오는 분이 계신 탓이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늘 놀랍다. 극을 연습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 물론 우승을 목표로 달려가는 거였지만, 그 과정 또한 즐거웠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결전의 날이 돌아왔다. 전분 군산에서 장수까지 거리는 1시간 40분쯤 걸리는 거리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자기 몫의 대사 연습을 하면서, 몇 분이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내가 맡은 역은 논개의 어머니인데, 직장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연습시간에 빠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니 되도록 결석을 하지 않아야 모임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는 장수 행사장에 도착을 해서 등록한 뒤 주최 측에서 마련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모두 제각기 분장을 하고 마음에 다짐을 했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 하기로.
'논개 시 낭송 퍼포먼스대회'에 참가한 팀은 총 10개 단체라 했고, 오후 2시 30분에 마침내 행사는 시작했다. 행사장은 커다란 체육관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시 낭송 단체들이 모두 그간 열심히 준비해 온 실력을 발휘하면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논개 대회인 만큼 모든 주제가 논개 이야기였다.
논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했다고 한다. 그러나 논개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숙부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 이웃 마을 사람에게 논개를 팔아넘겼다. 사연 많은 삶을 살다가 최경회가 담양부사로 재직할 때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최경회는 그 뒤 임진왜란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소식을 들은 논개는 남편의 원수인 일본 왜장이 술에 취했을 때, 그를 바위로 유인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일개 이름 없던 여인의 숭고한 정신에 마음이 울컥했다.
논개의 삶을 바라보며 눈물이 났던 이유
경연이 모두 끝나고 초대 가수의 공연도 끝나자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맨 마지막, 우리 '한시예' 팀 이름을 호명하며 '대상 한시예'라고 부르는 사회자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 팀원들 모두는 행사장 체육관이 울릴 정도로 환호를 하며 무대로 뛰어올라갔다.
시극 퍼포먼스가 끝나고 시상식 '한시예' 대표와 연출가 님이 상을 받고 있다. 대상 국회의장 상을 받는 장면
순간 감동이 몰려온다. 지나온 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기쁨도 컸다. 팀원들은 서로 덕담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연극이라고는 한번 해 본 적도 없는 초보자였다. 논개 어머니 역을 맡아 1장 마을 아낙네의 내레이션 다음 바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 일어나,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하고 노래를 한스럽게 쏟아내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작아지는 것 같다. 수없이 연습을 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 큰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수시로, 집에서 일할 때도 혼자 불러 보지만 별로 진전이 없어 염려가 되었다.
당일, 무대 아래 심사위원과 많은 관중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떨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왜 그럴까? 나도 의아했다. 울부짖듯 토해 내듯, 어떻게든 '한 많은 이 세상'이라고 소리를 내야 했다. 목이 조금 잠긴 듯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소리를 냈다. 극이 끝난 뒤 회원들이 내 첫 노랫가락이 성공했다는 말로 격려를 해 주었다.
우리가 한 시극의 주제는 '논개, 시들지 않은 꽃처럼'이라는 주제의 시극이다. 연기 도중 나오는, 죽어 있는 사람들 속에 사랑하는 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의 모습은 애달프고 슬펐다. 여인들도 전장에 참가해 돌을 나르고 죽어 있는 시체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 도중에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감정을 추스르는데 문득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시극을 하면서 나이 든 내 모습.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적은 듯한 지금,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까. 갑자기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축제는 끝났다. 논개 여인을 가슴에 새기는, 그러면서 내 삶도 회고해 보는 시간이었다.
<민족의 가슴속 화석으로 새겨진, 의강루에 불사로 살아난 구원의 여신 논개여, 거룩한 이름 그 이름이여. 즉어도 죽지 않은 파랑새 되어 오늘도 우리 곁에 머물며 얼마나 살아갈지 뒤야 뉘 알리오.> - 논개가 중에서
대회를 마치고 합동 기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