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이 내린 날, 시낭 송 하기

나루 스물다섯 번째, 출판 기념 문학콘서트

by 이숙자
국화꽃 위에 내린 눈

저 지난밤 서설이 내렸다. 서설은 상서로운 날이라 해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의미를 더 상기시킨다. 시 낭송 모임을 함께 하는 시인님은 나와 시 낭송 총무이신 선생님과 해마다 여류문인들 출간회 겸 콘서트에 우리를 초대해 주셔서 시 낭송을 했다. 올해 스물다섯 번째 출판 기념일이라 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청년의 모습이 되어 한참 성장할 나이다.



나는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참여를 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아직 농익은 시 낭송가 도 아닌 나를 초대해 주셔 시 낭송을 하도록 자리를 내어 주신다. 사람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더 행복해지는 걸 나는 안다. 그런 자리에서 시를 접하는 순간이 행복하다.


낭송하려 가기 전 날 밤, 나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혼자서 생각하다가 남의 잔치 날인데 한복을 입어 볼까? 하고 상자에 고이 모셔 놓았던 한복을 꺼내여 다림질을 했다. 두루마기까지 입어야 하겠지 하면서 혼잣말을 해 본다. 그러다가 바바리는 어떨까? 하면서 남편에게 옷매무새를 보아달라고 부탁을 하니 "다 괜찮아" 하면서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나는 오래된 옷만 있다는 푸념을 막으려는 심산 일 것이다. 그러면 어떠랴.


예전 우리 어르신들도 그랬다. 동네 생일잔치에 갈 때는 언제나 아껴 두었던 제일 고운 옷을 입고 잔치 상에 앉아 식사를 하시고 덕담을 하시던 풍습을 보아왔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는 옛 풍습이지만. 세월 따라 사람 사는 모습이 변해 가고 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나는 생각이 싹 바뀌었다. 실례될 정도는 아닌 편하고 따뜻한 오버를 챙겨 입었다.


다음 날 아침 열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시인님은 다른 회원 한 분을 모시고 우리 아파트 앞으로 픽업하려 오셨다. 언제나 참 성실하시고 진심인 분, 그분이 곁에 계셔 내 늦은 삶의 한 자락이 포근하다. 오래된 인연이었지만 새롭게 다시 만난 인연이 늘 감사하고 고마운신 분이다, 사람은 정으로 묶여 살아갈 때 외로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시인님은 행사장으로 가기 전 서울에서 내려오셨다는 대 선배 한 분을 어느 호텔 앞에서 픽업해서 가신다. 행사 참여차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한다. '여든여섯' 그 나이에도 강의를 하시고 시를 쓰고 계신다 하니 대단하신 분이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어르신 시인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가늠해 본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가까이 있는 분 시인님에게 또 배운다. 선배를 대하는 따뜻한 배려, 최선을 다하는 환대와 넉넉함을.


행사장은 군산의 대 문인 채만식 기념관이다. 지난해와 같이 여류시인님들의 출간한 책은 모두가 무료로 배포를 한다. 정말 책이 그립고 시가 그리운 분들은 이건 횡재를 만나는 거나 다름없다. 알만한 지인들과 서로 덕담과 따뜻한 안부를 묻는 것도 기쁜 일이다. 어려움을 뒤로하고 주부이기도 한 분들. 그분들 창작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박경리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소리나무 동아리 회원들의 음악공연

소박한 무대지만 음악이 있고 시가 있고 마음 안에 담아 놓은 글이 시가 되어 우리 마음을 촉촉이 적셔 준다. 겨울이 시작하는 날, 지난밤에 내린 서설은 마음 안에 그리움을 쌓아놓는다. 살아 있으면 이처럼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말이 없어도 좋다. 마음을 아련하게 해 주는 시어들과 기쁨을 가득 담겨 주는 노래 한 구절이 우리는 행복하다.

내가 낭송한 시는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시다.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대 문호인 박경리 시인의 삶을 그대로 살 수는 없지만

일상을 사는 모습은 어쩌면 나의 삶일 수도 있는 평범한 시어들이다.

시를 몇십 번을 읽고 외웠다.시어들이 마음 한켠이 찡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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