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도 창밖은 회색빛 하늘이었다. 나는 이런 날이 싫다. 괜히 기분이 가라 않기 때문이다. 폰 벨이 울렸다. 지인 동생이 "형님 첫눈 와요." 그 말에 곧바로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에서 흰 눈송이는 몽글몽글 솜을 풀어 날리는 듯 눈이 내렸다. 지인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참 신기하다. 때가 되면 눈이 내리고, 나무는 단풍이 들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은 알아서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한참을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그냥 바라보는 것은 실감이 나지를 않아 얼른 휴대폰을 열고 '첫눈이 온다구요' 이정석 노래를 틀었다. 그래, 이런 음악이라도 들어야 감성이 살아 마음이 포근해지지. 참, 감성은 나이와 무관하다. 눈 온다고 누구에게 수선을 떨기도 민망하다.
굳이 남에게 내 감정을 세세하게 말할 것도 없다. 자연의 변화는 그저 숨 한번 고르듯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음악을 들으며 감성에 젖어 혼자 느끼고 즐기면 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젊어서 처럼 누구에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혼자 즐기는 순간으로 나는 충분하다. 내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첫눈이 온다고요 이정석 노래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 구요
그때 옛말은 아득하게
지워지고 없겠지요
함박눈이 온다 구요
뚜렷했었던 발자국도
모두 지워져 없잖아요
눈 속 안도 눈덩이도
아스라이 사라진 기억들
너무 도 그리워
너무 도 그리워~후~
옛날 옛날 너무 도 추억이
고드름 녹이듯 눈시울 적시네
슬퍼하지 말아요
하얀 첫눈이 온다 구요
그리운 사람 올 것 같아
문을 열고 내다보네
한참을 노래를 듣는다. 내 가슴에 묻어둔 예전 기억을 되돌려 본다. 첫눈은 추억이고 그리움이었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학교 도서관으로 일하러 나는 가고 있다. 연말이 오고 날씨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서 자꾸 꾀가 생긴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해야 하나 겨울 날씨만큼 나도 변덕스럽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꿈에 부풀어 움직이는 걸 좋아했는데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서 나는 나도 몰래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고 싶어 지고 게으름을 피고 싶다.
남편은 내가 학교 도서관 갈 때마다 차로 태워다 주고 데리러 오고 그 짖도 미안하다. 학교 앞으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서 어떤 날은 십삼 원짜리 딱지가 날아오고 이건 뭐 하는 일인지, 하고 나는 헛웃음이 나온다. 도서관 사서 하는 일이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마음으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범칙금 딱지가 날아오면 마음이 씁쓸해 온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날씨가 좋으면 "끝나고 걸어갈게요." 했는데 어제는 도서관 일 끝나는 4시쯤 되니 왠 날벼락처럼 우박과 바람이 동반해서 흩뿌리고 있다. 날씨는 집 나간 나그네처럼 마음이 스산해 온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땐 나의 구세주는 남편뿐이다. "여보, 비 우박 바람 때문에 못 걸어가겠어요. 데리러 오세요." 아무 때, 어느 곳에서라도 내가 부르면 와 주는 남편은 내게는 구세주다. 얼마나 든든한지,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