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치매 걸렸어"?

남편 병원 예약을 깜박 잃어버렸다

by 이숙자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맨 먼저 남편에게 "굿모닝"이라고 인사부터 한다. 우리 부부는 오래전부터 각자의 방에서 편하게 취침을 해 왔다. 남편은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이고 나는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이다. 서로의 생활패턴이 다르다. 취미도 성향도 다른데 어떻게 부부로 반세기를 넘게 살아오고 있는지 나도 의문이다.


지금은 출근할 사람도 학교에 갈 사람도 없으니 조금 늦장을 부려도 되련만 남편은 언제나 꼭 그 시간에 일어나 자기 만의 시간표 데로 살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일정을 소화하는지, 때때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원숭이띠 남편은 호랑이 띠, 원숭이는 호랑이를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그냥 인정한다.


아침마다 남편은 일어나면 언제나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여 깎아 놓고 양배추 즙을 컵에 따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위가 좋지 않은 우리는 양배추즙을 먹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식탁 위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고 깔끔하다.


웬일이지?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여 깎아 놓고 양배추즙도 컵에 따라놓고 어제 떡집에 사 온 흰 가래떡을 후라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굽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침 드시게요?"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나를 흘끔 한번 돌아 보고서 하는 말이.


"당신 치매 걸렸어?" 하고 묻는다. "엥, 이게 무슨 말?'


그 말에 나는 마음에서 화가 올라오려는 것을 꾹 참고 "왜요?" 하고 그냥 보통 하는 말로 물어보았다. 내 말에 정말 어이가 없는 듯 남편은 화난 얼굴로 말을 하지 않는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는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아침 먹을 것을 쟁반에 담아 서재로 건너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정말 하룻밤사이에 사람이 이토록 사람이 변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오히려 나는 남편 걱정을 했다. 어젯밤 먹은 밥을 착각하는 걸까? 여하튼 오늘 상황이 안 좋다. 그냥 오늘은 서재에서 혼자 놀며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 잠바 어디 있어?" 하고 나를 부른다. 외출을 하려는 모양이다. "왜, 어디 가시 려고요?"라고 물어보니 "아직도 몰라?" 아!! 그때야 감이 온다.

이게 웬일인가...


그렇지, 오늘 남편 병원에 위내시경 예약한 날이지. 그것도 내가 예악을 했다. 내 가까운 지인 남편 병원에. 아, 상황파악이 되고 정말 내가 치매가 오는 건가 하고 놀랐다. 세상에 내일이 아니라고 까마득히 잃어버렸다. 나는 놀라서 "여보, 미안해." 빨리 꼬리를 내리고 부드러운 말씨로 나도 오버를 챙겨 입고 따라나섰다. 남편이 무엇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어쩌면 그리 까마득히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내 일이 아니면 이리 절박하지 않구나. 남편을 위한다는 말이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집중한다는 말을 하지나 말지,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새해가 되고 며칠 동안 나는 내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하던 일도 모두 쉬면서 한가해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인 남편 방에 그림이 예뻐 찍은 사진


올해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물론 남편에게 집중한다는 말도 틀린 생각은 아니다.


아침 일찍 간다고 9시쯤 병원엘 갔지만 1시 반이 다 되어 끝났다. 오래 약을 먹어도 완쾌가 되지 않는 위 때문에 남편은 혼자 나름 심각했나 보다. 혹시 암이 아닌가? "왜 이렇게 위염이 오래가는 거야" 하면서 혼자 고심했다. 다행히 내시경 결과는 위염, 식도염이라고 한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며칠 밤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나 보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위염을 앓아왔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음식도 엄청 조심하시고 위에 나쁜 음식도 절대로 먹지 않는다. 때론 답답할 때가 있다. 그래도 더 나쁜 상태가 아닌 지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고 나 보고 치매 아니냐고 말한 남편에게 화를 내진 않았지만 살짝 미운 마음도 남는다. 나이 든 남자들이라고 다 그런진 않을 거다.


결혼 전 말 이쁘게 해서 이 남자를 선택했는데 이건 완전 내 안목의 실수였다.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물릴 수는 없으니 견뎌야 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니 참고 살아야지 도리 없다.


아직 나는 치매는 아니다. 남편이 살짝 맘 상해 나에게 던진 말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삶의 중심이라 말한다. 나는 기도 하듯 내 중심을 잃지 않고 살기를 날마다 두 손이라도 모야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살짝 남편 흉보는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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