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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Jan 04. 2024

남부럽지 않은 나만의 행복 조각들

겨울에만 해 먹는 별미, 남편이 타 주는 보이차... 행복은 별것 없다

하루에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어떤 날은 정말 두 끼만 먹고살 수는 없을까 생각을 해 본다. 둘이 먹어도 셋이 먹어도 밥상 차리는 일은 늘 신경이 쓰인다. 특히 남편은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고 편식을 한다. 그래서 더욱 끼니때가  되면 "뭘 먹지?" 매번 물어보게 된다.


겨울 점심으로는 가끔 무밥이나 콩나물 밥, 또는 굴밥, 톳밥도 해 먹는다. 반찬을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기 간편해서 좋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과 달래 식재료가 있어 오늘 점심은 한쪽은 콩나물밥, 한쪽에는 굴을 넣어 굴밥을 했다. 먼저 쌀을 좀 담가 놓았다가 콩나물도 씻어 냄비에 밥을 안쳤다. 밥이 끓고 난 후 굴을 넣고 뜸을 들인다.


누룽지 맛있게 만드는 법


뜸을 들일 때 불을 약하게 놓고 한참을 놓아둔다. 별미인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냄비 밥을 해 온 경험에 의해 불을 어느 정도 조절해야 누룽지가 잘 타지 않고, 먹기에도 좋도록 만들어진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정말 별것 아닌 거라도 정성을 다 하면, 원하는 모양이 나온다.

            

                                          굴밥, 콩나물 밥 누룽지 


남편이 식탁으로 오더니 "와아 누룽지 맛있게 눌었다"하며 좋아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별스럽지 않은 음식이지만 정성스럽게 지은 콩나물 밥, 굴밥을 달래 간장에 참기름 듬뿍 넣고 슥슥 비벼 먹으니 참 맛있다. 가끔은 색다른 메뉴가 입맛을 돋게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행복이 별것 아니다. 내 손으로 요리를 직접 만들 수  있어  감사하고 별스럽지  않은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의 조각들이 있다. 예를 들면 누가 봐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한 조각 이승에서 느끼는 행복은 있지 않을까. 누구는 아침마다 배달 오는 신문을 읽으며 행복의 조각을 주울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산책을 하며 자연을 만나는  기쁨, 그 또한 행복의 한 조각이라 말하고 싶다.


나이 든 세대라서 그런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노년의 삶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는 '남편 밥까지 세끼 차리는 것 불편하지 않으세요?'하고 나에게 묻지만, 나는 밥 챙기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은 탓이다. 날마다  일상 속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으려면 수도 없이 많다. 오늘도 남편 점심밥을 차리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아침엔 내가 우려 마시는 녹차 한 잔에 행복하고, 오후가 되면 남편에게 부탁해 보이차를 마시는 순간도 행복하다. 겨울에 마시는 보이차 맛이 더 각별하다.


남이 보면 뭐라 할지 몰라도 이게 나만이 느끼는 행복의 조각들이다. 글을 쓰는 순간, 시를 외우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 거기에 언제나 든든한 남편은 지금도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이렇게 작은 일상들이 내가 향유하는 행복의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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