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된 인연과 헤어졌다

35년 된 모임을 해체했다

by 이숙자

해가 바뀌면서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가볍게 살고 싶다. 물건도. 마음도. 젊어서와 달리 무엇이든지 무거우면 힘겹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조차 무거운 건 피하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전 잡지에서 본 놋그릇이 너무 멋있어 구입했지만 몇 년 쓰지 않고 싱크대 서랍장 안에 고이 모셔 놓고 있다. 놋그릇은 닦아야 하고 무겁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볼 땐 놋그릇으로 차린 밥상이 좋았다. 얼마나 산다고, 밥상의 품격이라도 갖추고 싶었다.


그러나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의욕이 줄어들고 자꾸 귀찮아진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도 자꾸 피하게 된다. 말도 많이 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요즈음 들어 내 마음의 변화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마음 안에 그리움이 진심인 사람과 나머지 삶을 잘 살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어제 35년 된 모임을 끝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35년 된 모임을 4년 동안 쉬고 있다가 어제 나갔다. 코로나가 오기 시작하면서 모임은 멈추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풀리고 두세 번 모임을 한 후 다시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나는 이건 무슨 상황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분명해야 한다.


4년 동안 서로 안부를 묻는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면 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무심해도 너무 무심한 사람들, 나는 소식이 궁금해서 며칠 전 총무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혹여 누가 아프지 않나 궁금하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총무님은 아무 일 없다고 한다. 그러면 무슨 설명이라도 해야지 이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체 소식도 전하지 않고 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내 의견을 말했다.


몇 해 동안 나는 총무님과 회장님에게 안부는 두어 번 물어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뒤로 또 소식이 끊어지고 감감무소식. 서로의 마음에는 그리움 간격이 너무 멀어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모임은 34년이란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온 인연들이다. 우리의 관계는 동창도 아니고 고향이 같은 친구도 아니다. 자녀들 자모에서 만난 엄마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엄마들이 좀 극성스러웠다. 좋게 말하면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는 말이 맞다. 어떻게 하든 자녀를 서울로 대학을 보내려는 엄마들은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며 자모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때 만난 학교 대표 엄마들 22명이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사 간 사람, 또는 세상을 달리하고 이별한 사람, 남아 있는 사람은 여섯 명뿐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채소를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당하게 물도 주어야 하고 햇볕도 쪼여 주면서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채소도 잘 자란다.


사람관계도 마찬 가지다. 그런데 너무 서로에게 무심한 지금, 이 사람들과 내가 인연을 이어 가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문제는 서로 가 추구하는 공통점도 없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그리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쯤에서 정리를 하지 않으면 마음의 에너지 낭비라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세월이란 참 묘한 기운을 가지고 있나 보다. 보지 않을 때는 아무 감흥도 없던 사람이지만 같이 있으니 편안했다. 그렇다고 편한 것을 가지고 시간 낭비를 하고 살 수는 없다. 막상 헤어지려니 조금은 섭섭했다. 어쩌랴,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삶의 질서인 것을.


사람, 사람마다 같이 했던 기억들이 남아 마음 한편이 아련해 온다. 나이가 많아지면 주변을 가볍게 정리하고 맑은 마음으로 고요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까지만 아프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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