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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r 20. 2024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재활 재가 노인 복지 센터에서

실습도 막바지다. 어제 하루 쉬고 나왔더니 오늘은 세 사람만 실습을 하게 됐다. 복지센터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은 10시가 되어야 모두 입소를 하신다. 오래 만나온 분들이라서 그런지 만나면 반갑게 인사들을 하신다.

"누님 오셨어요?" "동상 왔는가?"  몸은 아프지만 인지기능은 거의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사람과의 만남은 정에서 오는 기쁨이 크다.


입소하시는 데로 모두가 TV 앞으로 앉는다. 어젯밤 지냈던 담소를 나눈 뒤 10시가 되면 TV에서 나오는 흥겨운 노래에 맞추어 체조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래 해 왔기 때문인지 모두가 곧잘 따라 하신다. 우리 실습생도 뒤에 서서 따라서한다. 운동이 꽤 많이 된다. 이곳을 나오면서 덕분에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하루 운동 량이 채워져 다행이다.


 예전에는 어린이만 유치원을 다녔는데 지금은 사회가 초 고령화가 오기 시작하면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노치원이 생기다니 참 세상사 모를 일이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도 세상사는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그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매번 생각을 거듭해 본다.


운동이 끝나면 게임을 하면서 한 바탕 소란스럽다. 건강이 좋지 않아 입소한 노인들이지만 놀이는 아이들 놀이 수준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이 악화되면 사람은 인지 기능도 자연히 떨어지도록 되어있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을까? 그저 나이 들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내려앉는다.


게임을 하고 끝나면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낮잠을 자고 오후 2시가 되면 오후 수업이 시작된다. 간간히 오후 수업은 만들기 아니면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며칠 실습을 하다 보니 그날그날 프로그램을 알 수 있다. 우리 실습생은 밖에 나가 점심을 사 먹고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하며 쉬다가 2시가 되면 복지원으로 들어온다.

                                          복지원 어르신들이 만든 작품들


오후 시간은 만들기나 그림 그리는 시간이 대 부분이다. 나는 그곳 복지원에서 91세 되신 어르신과 두 번째 만들기 시간을 같이 했다. 체구도 작고 깔끔하시고 인지 능력도 정확하시다. 그림에 색칠을 하시면서 차근차근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를 꺼내여 들려주신다. 어르신은 그림에 색칠도 아주 꼼꼼하게 잘하신다. "어머, 너무 잘하시네요." 칭찬해 주니  너무 좋아하신다.


91세 어르신의 인생, 나이 드신 어르신은 삶의 보따리가 한 아름이다.


나와는 꼭 10년 차이다. 그 어르신은 자녀를 남매 두셨고, 남편은 47살에 하늘나라로 가시고 남겨진 남매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를 하시며 살았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진즉에 모두 성장을 해서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어르신은 살아온 날들을 담담히 말씀하신다.


조금은 여유롭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아보려 하지만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다. 단독 사시다 몸이 불편해 지금은 원룸을 얻어 신혼방처럼 예쁘게 꾸며 놓고 사신다고 한다. 뒤늦게 여유와 한가로움 찾아 오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찾기도 전에 오로지 자식들 삶을 지키주기 위해 살아냈던 우리의 어머니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삶이 아닐지 잠시 생각해 젖는다.


그 옛날 언제 공부나 해 보았을까 부모님이 짝 지워 주신 사람과 만나 알콩 달콩 살다가 님을 먼저 보내고 오로지 자식들과 살기 위해 애쓰셨을 그분의 인생.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계실까? 지금 입고 계시는 예쁜 세타도 손자가 사 주셨다고 나에게 살짝 자랑하신다. 그 모습이 소녀 같으시다. 말씀도 차분 차분 조용하시는 분.


 유일한 낙이 이곳 복지 관에서 만든 작품들을 집에 가지고 가셔 딸이 사다준 투명 스케치 북에 다 모아 놓고 보시면서 즐기신다고 말씀하신다. 실습이 끝나는 날은 수선화를 만드는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 어르신 앞에 앉아 수선화 꽃을 색종이로 접어 오리고 풀로 붙이고 수술을 만들고 꽃대로 만드는 걸 도와 드렸다. 다행히 나는 수를 놓았고 그림을 그려서 그런 일 하는 것은 쉽게 빨리 할 수 있었었다.


수선화

그 어르신은 다 만들어진 수선화 꽃을 보면서 좋아하신다. 저는 오늘까지 끝나고 내일은 이제 오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어르신은  한 말씀하신다.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그 옆에 어르신까지도, "잊지 않을게."  그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듯 내 마음이 울컥해 온다.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스미듯  다가온다. 그 말의 뜻이 내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여러 사람 만들 때 따라 하지 못하면 괜스레 등에서 땀나는 일이다.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그 한마디를 가슴에 안고 나는 10일간의 요양보호사 실습을 마친다. 내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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