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아프지만 약은 먹을 수 없었다. 이유인즉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받으려면 소변검사를 거친 후 마약성분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설명을 교육원 원장님이 말하신다. 나는 지난 월요일 병원 갔다가 감기 약을 한번 먹었고 더 이어서 먹지 못했다. 혹여 항생제 속에 어떤 성분이 있을지 몰라서다. 자격증을 따는 절차가 여러 가지 복잡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아직 몸이 좋지 않으니 집안일을 할 의욕도 없다. 책을 보려 해도 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봄 햇살이 좋은데 바람 끝은 아직도 시려 몸은 따스한 곳만 찾는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살면서 요양보호사 시험 한번 본걸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이리 요란스럽다.
3개월 가까이 한바탕 파도가 휩쓸고 간 듯, 지난 시간들이 아득해 온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정말 내 나이에 무리한 도전이었다.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았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고생한 만큼 얻어지는 결과물이 있기에 삶은 공평하다. 이번 교육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차 한잔을 우려 놓고 봄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어려운 숙제를 끝낸 다음 느끼는 홀가분한 여유일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몇 날을 보냈다.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나는 좋다.
마음 안에 소중함과 절박함이 없었다면 못 해냈을 것이다. 다른 일보다 이번 일은 더 많이 생각하고 꼭 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던 일이라서 교육시간에는 전력을 다 했다. 힘들었지만 나름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었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도 좋았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기도 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고 점심 먹자는 지인에게 온 전화다. 감사함에 거절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밥을 먹는 일은 정을 나누는 일이다. 전화를 받고 남편 점심부터 준비한다. 매번 혼자 먹었던 남편의 밥상에 정성을 담으려 한다. 다행히 딸들이 보내 준 건강식들이 있어 삼계탕을 데워 드리고 문밖으로 나선다.
바쁘게 공부할 때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봄날들, 이제야 주변의 꽃도 눈으로 들어온다. 언제 피었는지 동백도 피었고 홍매화도 피었고 봄 햇살도 곱다. 자연과 마음이 멀면 얼마나 삭막할까. 늘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도 이해가 됐다. 이 대지위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우주의 중력까지도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야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감성이 돌아와 나를 다시 만난 것 같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지배하듯 사람과의 관계도 마음의 작용이다.
몇 사람이 모여 밥집으로 갔다. 우리 집에서도 가까운 거리다. 지금도 이런 집이 있나 싶을 정도로 허름하고 정돈이 되지 않은 집이다. 얼마나 자신 있으면 이런 환경에서 장사를 할까 의아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맛만 있으면 이런 곳도 맛집이 된다. 나이 든 부부인듯한 분들이 운영을 하는 것 같다.
볼테기 찜
'볼테기 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다. 대구 생선에 콩나물을 넣어 요리한 음식이다. 아귀찜이나 맛이 비슷했다. 입맛 없는 사람도 술꾼들도 좋아할 수 있는 맛이다. 밥을 먹으면서 음식과 더불어 사랑을 마음 안에 담는다. 사람이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입맛 없어 아침밥도 거의 걸렀는데 사랑이 담긴 음식 볼테기 찜을 먹고 나니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밥심이다. 마음이 뜨끈해지며 감사함에 울컥해진다.
나이 탓일까?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이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랑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살면서 곁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고 축복이다. 내 안에 사랑하는 마음을 쌓고 살아야 함을 다시 느끼는 날이었다. 오늘 처음 먹어본 볼테기 찜은 사랑이 더 해져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