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금방 눈이라도 아니 비라도 내릴 듯 회색빛 하늘이다. 체감 온도는 내려가 마치 겨울날씨답다. 아파트 주변은 아직 채 가을로 다 물들지 않아 은행나무는 푸르름이 아직도 남아 있고 완전 가을 느낌이 나려면 시간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자꾸 겨울로 건너가려는 날씨다.
지금이 추워야 할 때는 맞다. 입동도 지나고 겨울로 가는 11월도 중순이다. 그런데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얼마 전 날씨는 여름이 아닌가 할 정도로 더워 반팔을 입었다가 오늘 같이 추운 날은 겨울옷을 입어야 한다. 남편 절친인 부부와 밥 한번 먹으려 해도 시월 내내 너무 바빠 시간내기가 어려웠었다. 모처럼 오늘 약속을 했다.
오늘 만나는 부부는 남편과 몇십 년 지기 친구다. 그 친구 부부와 오랜만에 만남이다. 부인은 살림을 잘해 나는 가끔 싱싱한 야채도 얻어먹는다. 도심 속에 살면서 친구네 빈 땅에 야채도 이것저것 가꾸는 부지런쟁이다. 만날 때마다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늘도 상추와 무를 가지고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때론 미안하다.
정다운 사람과 밥 한 끼는 위로다. 기쁨이다. 또 다른 맛난 걸 먹자고 약속할 수 있어 좋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것은 외로움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친구가 있어 감사하고 감사하다. 맛있는 걸 먹고 다시 만날 날을 또 기약한다. 기다림,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을 마음 안에 담고 사는 것은 행복이다.
나이 많은 남편은 이제 만날 친구가 자꾸 줄어들어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하다고 말한다. 어쩌겠는가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질서인 것을. 사실은 살아 있는 사람도 만남이 줄어들고 관계가 멀어진다. 자주 만나지 않으면, 눈앞에서 멀어지고 정도 멀어진다. 오직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했던 사람은 우리 삶의 동반자 같은 관계다.
사람과의 관계도 유통 기한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것은 세월 가면서 변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젊어서와 다른 색깔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고 고독하다고 말한다. 정호승 시인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은 눈물을 흘리신다'라고 수선화 시에서 말했다.
사람은 모두가 외롭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고 산다면 다소 위안이 된다.
나이 든 사람들은 더 외롭다. 외롭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안으로 안으로 가두는 일 일 수도 있다. 나이 듦이란, 모든 것에 관심이 멀어지고 그냥 조용히 편안하고 싶어 진다. 삶에서 연민의 정을 끊어 내는 것, 쉽지 않지만 자꾸 마음을 다독이는 연습도 필요하리라.
사람마다 개인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나이 들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싫어진다. 말을 많이 한들 자랑이나 자기주장이 센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저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 편하다. 열정은 많은 에너지 소모가 힘겨워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저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이 좋아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가지는 마음일까?
나는 때때로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내 영혼과 그대의 영혼이 맞닿지 않으면 관계는 외로움이다.
누가 나를 온전히 위로할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상 속에서 그리운 사람하나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일도 행복일 것이다. 누구라도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