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요양 보호사 교육 필기도 실습도 끝나는 날이었다. 2024년 새해 1월 17일에 시작해서 3월 16일 교육이 끝났다. 다른 일 까지 꼭 세 달이 걸린 셈이다.
보호사 교육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쉬는 시간도 10분 화장실을 다녀오고 점심시간도 모자란 30분, 조금의 여유도 없이 하루 8시간씩 강행군 수업이었다. 수업도 언제나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 그래서 정신없이 공부하다가 책을 덮고 나면 무슨 말을 들었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공부는 자기가 보충해서 복습을 해야 했다.
사실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힘든 수업을 80대인 내가 견뎌냈다. 교육받는 동안은 늘 마음이 바빴다. 집에 와서도 남편의 다음날 점심 준비와 내 도시락 준비로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가 언제 이토록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나머지 내 삶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지 통찰할 수 있었다.
80대, 다시 세우는 나의 인생 플렌.
수업은 끝났다, 남은 건 시험
수업받은 교재들, 요양 보호사 교육에 관한 교재들
지난 금요일, 함께 공부하던 우리 조 세 사람이 마지막 실습을 마치고 나왔다. 실습했던 곳을 나오면서 서로 고생했다고 위로를 건네면서 이제 나머지 일은 3일 후 시험만 보면 시원할 거라고 말했다. 교육과 실습은 끝났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이 남은 것이다.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은 찜찜한 기분이다.
남은 3일 동안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격려를 하면서 세 사람은 저녁을 먹었다. 아무 탈 없이 교육과 실습을 끝낸 것에 안도를 하고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육원을 오고 갈 때, 실습을 할 때, 점심을 먹을 때 언제나 곁에서 나를 챙겨준 젊은 학우 은숙 씨가 고마웠다. 나는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더 기뻤다.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몇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봄이라고 하지만 군산의 밤은 바람이 더 차갑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여보 나 왔어요" 하자 남편은 "수고했어" 하면서 반겨준다. 언제나 반갑게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따뜻하고 감사한 일이다. 춥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직 시험이 남았지만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는 일이다.
봄이면 목에 두르는 목수건
참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생활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을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힘들었던 도전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정말 가만히만 앉아 있으면 몰랐을 일을 도전하고 실행하면서 알았다.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우리 몸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꼭, 자격증을 따는 게 목적이 아니어도, 요양 보호사 교육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변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험 직전, 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욱신 욱신 쑤셔 아파서 깼다. 몸살 인가 보다. 목도 잠긴다. 이걸 어쩌나, 내일모레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시험 볼 때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몰려온다.
아침이 됐는데도 토요일이라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집에는 타이레놀뿐인데, 약을 잘못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내가 잘 아프지 않은데 무리하긴 정말 무리했나 보다. 문제집과 교재책을 보야야 하는데 책을 볼 수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휴대폰으로 관련한 온라인 영상을 틀어놓고는 보는 둥 마는 둥 누워서 끙끙 앓았다.
스스로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도 저녁도 외식을 한 탓도 있지 않나 싶다. 속도 메슥거리고 토할 것 만 같다. 뒤늦게 몸 관리를 못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비몽 사몽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면서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간신히 남편 밥을 챙기고 또 이불속으로.
남편과 이웃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가 될 테다
어느 날 바라본 남편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애잔하다. 위가 좋지 않아 평소에도 식사를 많이 못하셔서 그런지 아주 왜소해진 몸매가 마치 마른 낙엽이 떨어져 있는 땅 위에 뒹구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쇠해지고 힘이 없어 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
내가 이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후회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어찌할까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나이 90이 되는 남편, 아프면 요양은 내가 할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자격증 도전이었다. 나 좋아하는 일만 찾아 하고 즐기면 뭐 하나 싶었다. 곁에서 남편 외롭지 않게 해 줘야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삶들. 이런 노력들이 내 삶의 흔적이고 앞으로도 나의 인생이 될 것이다.
전화를 한 딸들은 야단이다. 병원에 가서 영양 주사라도 맞으라고, 바보처럼 그런 것도 못한다. 안 되겠다 싶어 지난 월요일,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그렇다고 금방 몸이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책도 못 보고 누워서 폰을 열어놓고 유티브 영상을 듣기만 했다. 시험 보는 날, 몸은 아프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아야 한다. 시험을 보기 위해 몇 개월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노심초사 걱정이다. 시험을 망칠까 봐서.
화요일, 교육생 30명은 버스를 타고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혼자서 컴퓨터 한 대씩 칸막이 자리에 배치되어 앉았다. 기침은 나오고 목은 간질간질거리고... 더욱이 가래까지, 주변을 둘러보니 엄숙한 분위기다. 손바닥마저도 다 조사한다. 혹여 커닝 페이퍼가 없는지 살핀다.
국가고시란 이름으로 시험을 보는 일은 처음이다. 그런데 긴장은 되지 않는다. 타닥타닥, 마우스 소리만 고요를 깨트린다. 여전히 기침은 나오고 목도 아프고 어지럽다. 정신을 차리려고 긴장하면서 차분히 시험은 보았다. 헷갈리는 아리송한 문제들이 많아 조금은 걱정을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걱정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기다려 보아야지.
시험 본 내 자리
시험 본 다음날 아침 10시에 문자로 합격 여부를 알려 준다는데, 합격하겠지 하면서도 설마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꿈만 꾸었다. 발표하는 10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다른 날은 시간이 잘도 가는데 초조해서 자꾸 시계만 보게 된다. 정확하게 10시가 되어 폰에서 카톡이 울린다.
'이숙자 님, 요양 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우와! 정말 내가 해 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게 뭐 별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직접해 보니 그건 아니었다. 요양 보호사라는 역할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천한 일을 절대로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아주 중요한 구성원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앞으로의 나머지 삶은 남편을 돌보며 작은 힘이라도 이웃을 함께 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81세, 요양원 자격증을 딴 요양 보호사다. 내가 나에게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가족들과 이웃, 동료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마치 무슨 벼슬에 장원 급제라도 한양, 축하가 좋으면서도 조금은 민망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81세, 내 나이에 나처럼 요양 보호사 자격증 딴 사람이 있을까? 오늘은 글을 쓰면서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