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어김없이 봄이라고 말한다. 물론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그 계절에 알맞게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그중에서 좋아하는 계절이 봄인 것은 확실하다.
드디어 봄, 봄이 돌아왔다. 봄, 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왜냐하면 봄이 오면 겨울 동안 잠자고 있던 내 감각 기관이 살아나고 즐길 일이 많아 행복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일은 날마다 기록이 쌓여 내 삶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봄이 오면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산책할 수 있기에 그런 순간들이 즐겁다. 각종 꽃이 피어나고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겨울 동안 집안에 갇혀 답답했던 마음도 생기가 돌아 희망이 마음 안에 차 오른다. 막 피어나는 연둣빛 색상은 희망의 상징 같다.
겨울은 어둠에 갇혀 우울했다면 봄은 생명의 환희를 알게 하고 희망을 전해 준다. 죽어 있는 듯한 나무에서 새싹처럼 연둣빛 예쁜 잎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있으려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이 축복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들은 유독 봄이라는 계절에만 느낄 수 있다.
내 나이 팔십 고개를 넘었고, 남편 나이는 구십을 향해 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나는 '시니어 클럽'에 나가는 것도 그만두었다. 작은 돈이지만 용돈 벌이로 신났던 마음도 접었다. 되도록 밖에 나가는 모임도 줄였다. 남편과 같이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밖에서 찾는 즐거움 보다 남편과 노는 시간이 더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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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하다고 말하신다. 아마도 혼자만의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무엇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취미생활을 해 보라고 말을 건네도 밖에서 노는 일에 흥미를 못 느끼고 집에만 있으니 자칫 우울감이 올 수도 있어 염려가 되었다. (관련 기사: 내 새해 계획은 90세 가까운 남편과 노는 것https://omn.kr/26xls ).
며칠 전 노인 복지관에서 문자가 왔다. 완주 상관에 있는 숲 체험과 편백 베개 만들기 행사가 있다고 신청하라고 한다. 나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했다. 전화받는 직원의 숲체험 설명과 함께 "지금 8자리 남았어요. 빨리 신청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20일, 남편과 복지관으로 향했다. 도착을 하니 직원이 미리 이름표도 만들어 놓고 조도 나누어 참가자 한 명씩 목에 걸어준다. 거의가 할머니들이 많았다. 부부도 몇 쌍이 있었고 우리는 복지관에서 40명이 버스를 타고 완주 상관면에 있는 편백 숲 체험을 떠났다.
미나리냉이 야생화야생화 꽃과 풀에 설명하는 숲 해설사
햇살도 좋고 따뜻한 날씨는 나들이하기에 아주 알맞은 날이다. 군산에서 완주 상관을 1시간 조금 넘으면 도착하는 멀지 않은 곳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싱그럽고 생기가 돈다. 남편과 함께 하는 야외 나들이라서 마음부터 편안하다.
나이 들면 부부는 서로의 간호사가 된다
올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남편과 놀면서 함께 추억 만들기다. 언제 세상과 이별할지도 모르는 나이, 어떻게 하면 남편과 지루하지 않게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나이 드신 남편은 마치 내가 보호자 같다. 부부란 나이 들면 서로의 간호사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배우자는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90 가까운 남편은 여전히 운전을 하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에 조금씩 운행 횟수를 줄이고 시내 가까운 거리만 운행한다. 곧 있으면 그것마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남편 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니 부담도 없고 가벼운 마음이다. 이번을 계기로 버스 여행을 구상해 보려 한다.
완주 상관 숲에 도착하니 어느 사이 숲 해설가님들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름표에 쓰인 조원들과 선생님 안내에 따라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기가 엄청 좋아 마을 이름도 공기 마을이라 부른다고 한다. 정말 공기가 아주 상큼하다. 숲에서 품어내는 공기는 풀들과 함께 엄청난 향기를 품어 내고 있다.
연둣빛 나뭇잎이 아름다운 봄 풍경 연둣빛 나뭇잎이 아름다운 봄 풍경
편백 나무 숲
야생화
천천히 숲길을 걸어가며 야생화도 만나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으름 나무도 만났다. 숲 해설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바라보는 야생화들, 나무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니 더 신기하고 재미있다. 숲 체험 후 다리가 피곤하다고 족욕도 하고 점심은 야채 비빔밥을 먹었다. 마치 봄을 먹는 것처럼 기분이 상큼하고 좋았다.
점심을 먹은 후 잠깐 쉬기 위해 편백 숲으로 걸었다. 편백 숲에는 평상이 놓여 있어 쉴 수 공간도 있다. 모두가 누워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순간 정말 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숲 해설가님이,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한 사람씩 개인 사진을 찍어주면서 엽서에 붙여 주었다. 그리곤 '숲 찰칵'이라 고 쓴 엽서에 본인 이름과 자신을 위로하는 말 한마디를 아주 짧게 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옆모습으로 찍은 내 사진을 보고는 "시인 같으세요."라고 하신다.
"저는 시인은 아니고 시 낭송은 하는데요"라는, 생각 없이 답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쉬는 시간에 시 낭송을 두 번이나 했다. 다행히 요즈음 외우고 있는 시 양광모 시인의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라는 시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낭송했다. 안 틀리고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시 낭송 후 멋쩍은 마음이었는데 어떤 어르신은 내 시 낭송을 듣고 울 뻔했다는 말씀에 다소 위안이 되었다. 어떤 분은 연세 있어도 트로트를 맛깔나게 불러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서 시 낭송이라니 생각도 못한 일이다.
편백배게 편백나무 조각을 넣어 베개를 만들었다.
버스 타기 전 천연 염색한 누비천에 편백 나무를 자잘하게 썰어놓은 편백나무 조각을 베갯속 천에 넣어 낮잠 베개를 만드는 체험을 했다.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면 편백나무 숲에 누워 있는 느낌으로 쉴 수 있어 특히 나이 든 어른들에게 필요한 선물이다. 이 모든 행사는 산림청에서 시민들을 위한 행사라고 한다. 참 세상은 자꾸 변해 간다.
편백기름을 넣은 깜찍한 목걸이도 만들고, 개인 사진도 찍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엽서에 남긴다. 남편은 자기 이름을 엽서에 쓰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여러 경험을 숲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날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특히 오늘의 주제는 "숲~ 찰칵! 나야 나"였다. 주제가 좋았다. 나를 잊고 희생만 하고 살아온 우리 노년세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주는 느낌이었다. 연둣빛 나뭇잎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선물 같은 날이다.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하루라 더 특별한 날. 숲 해설가님의 친절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