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기쁜 일 가운데 한 가지는 봄나물을 먹는 일이다. 추운 겨울 땅속에 움츠리고 있던 나물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올라와 우리 밥상에 봄을 선물한다.
봄나물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은 머위와 가죽나물이다. 머위는 땅에서 나오지만 가죽나물은 가죽나무의 순이다. 가죽나무가 귀해서 그런지 시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나물이다. 어쩌다 시장 노상에서 할머니들이 한두 번씩 팔 때가 있는데 그것도 시기가 있어 며칠이면 자취를 감춘다.
예전에는 시골 동네에 가죽나무가 쉽게 눈에 뜨였는데 지금은 시골에도 가죽나무가 흔하지 않다. 그런 만큼 가죽나물 만나기가 어렵다. 나는 해마다 가죽나물이 언제 나오나 기다린다.
마트에서 사 온 가죽나물
동네에 새로 개업한 식자재 마트에 무엇이 있을까 구경 삼아 들렸다. 예전 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고 세일도 많이 하고 있었다.
나물 판매대에 가죽나물이 있어 반가웠다. 양도 작은데 9800원이란 가격표가 붙어있다. 이건 아닌데, 아무리 물가가 비싸기로 비싸도 너무 비쌌다. 섭섭하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두 팩이나 사도 삶으면 나물 한 접시 될 텐데, 그렇게까지 사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다시 볼일이 있어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가죽나물 값이 2900원이라니. 내 눈을 의심하고 다시 보아도 그 가격이 맞다. 어제 가격표 위에 덧씌워 가격표를 붙여 놓았다. 그 정도면 사 먹을 만하지 하는 마음으로 두 팩을 사가지고 와서 단단한 줄기는 자르고 씻어 냄비에 소금 한 줌 넣고 물을 끓였다.
추억의 음식
연한 잎만 다듬어 놓은 가죽나물
끓는 물에 나물을 데친다. 붉은빛이 나던 가죽나물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순간 푸른색으로 색이 변한다. 삼분 정도 삶은 다음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꼭 짠 후 된장, 고추장, 매실청, 마늘, 들기름, 통깨를 넣고 손으로 무치면 가죽나물은 특유의 향을 내며 맛있어진다.
이 맛을 즐기려 일 년을 기다렸다. 어떤 분들은 이런 독특한 향 때문에 가죽나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죽나물을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못 잊어 꼭 가죽나물을 먹고 나서야 봄을 보낸다.
가죽 나물은 김치로도 담가 먹고 또 장아찌로도 담그고 또는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 햇빛에 건조해 부침개를 해 먹으면 상상을 초월한 특별한 맛이다. 또는 마른 가죽나물을 쌀가루를 묻혀 튀기면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죽나물 무침
사람은 각기 좋아하는 자기만의 추억 음식이 있다. 나도 그렇다. 예전 큰집에 가면 할머니는 평소에 잘 드시지 않던 음식도 손녀가 왔다고 해 주셨다. 그때는 그게 할머니의 손녀 사랑이었는데 할머니 마음을 몰랐다. 세월 지나고 내가 할머니가 된 후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다니.
그래서 그런지 가죽나물을 먹을 때면 할머니가 그립고 늘 곁에 계시던 엄마도 그립고 그 옛날 할머니가 사셨던 시골집도 그립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갈 수도 없는 그곳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가죽나물을 보면 그리움에 마음이 아려 오는지도 모르겠다.
봄나물이 나올 때 내 그리움은 날개를 달고 옛날로 돌아간다. 그리움을 쌓아가는 일도 우리네 삶의 한 조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