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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y 20. 2024

형님, 목이 메어 애달프게 부르는 마지막 한마디

내가 사랑하는 형님이 하늘로 떠나셨다

찔레꽃이 곱게 피는 5월, 찔레꽃은 내겐 추억이다. 오늘 사랑하는 큰댁 형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결혼해서 반세기라는 세월, 삶을 공유해 온 형님도 내게는 추억이며 내 삶의 일부였다. 여든다섯 해를 세상에서 살다가 이제는 만날 수도 없는 먼 곳으로 가시고 말았다. 삶은 영원한 건 없다지만 정작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은 아프고 슬프다. 내 삶의 한 조각이 소멸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날들.


형님은 이십 대에 결혼하여 종갓집 맏며느리로 자식 다섯 낳아 기르시고 층층시하 어른들 까지, 일 속에 묻혀 살았다. 어른 들 살아 계실 때는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밥상 차리는 일이 숱하게 많았고 한분 한분 돌아가시고 나서 일 년에 제사는 일곱 반상이나 지내야 했다. 나 역시 둘째 며느리지만 결혼 55년 제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사 음식을 같이 해 왔다. 하여간 시댁은 제사가 진심인 집안이었다.


옛날 세상, 며느리의 숙명처럼 여기고 서로 위로하며 반세기를 같이 살아온 내 육친 같은 형님.

조상 모시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가, 사람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한계치가 있다. 너무 힘들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옛 말에 골병든다는 말이 있다. 예전 며느리 들은 골병이 들 정도로 일 속에 살아왔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프기 시작한 형님, 허리가 아파 수술을 했고 수술 후유증으로 더 아파 전국 유명한 병원은 모두 찾아다니실 정도였지만 연세 들고 더는 손 쓸 수 없어 집에만 머물다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2년이 된 후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아마도 당신이 예견이라도 하신 듯 먹는 걸 거부하시고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은 살아야 할 명분이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는다.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누구나 가야 하는 저승길이지만 어떻게 생과 사를 마무리를 해야 할지, 나이 들면 그 일이 숙제처럼 가슴에 않고 살고 있다. 가까운 가족과 이별은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형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을 베풀었다. 사람이 잘 살고 못 살고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알게 된다. 종갓집 며느리로 힘들었지만 주변에서 많은 존경도 받았다. 장례식장은 형님 가시고 잊고 살던 친척들이 찾아와 추억을 뒤돌아보는 시간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렵지만 잘 살아야지!!


산소 에서                                                                            주인 잃은 하얀 작약꽃이 더 서럽다


한 줌의 제가 되어 땅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산자와 이별을 하는 순간,  목이 메어 한번 부르고 형님을 보낸다. 부디 저 세상에 가시어 아프지 말고 행복하셨으면 하는 소망으로 두 손을 모은다. 허망하고 헛되고 헛되다는 라는 성결구절이 생각이 났다. 형님은 땅에 묻히고 산자들은 덥다고 나무 그늘에 서 있으려니 바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체 살랑살랑 불어 볼을 스친다.


나는 그 바람마저 슬픔으로 밀려온다. 이승과 저승의 사이 간격을 어느 만큼 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생과의 이별. 나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유골함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형수를 보내는 남편의 말 또한 내 슬픔의 씨앗처럼 아프다. " 형수 먼저 가 계셔요, 나도 곧 따라갈게요."


한 사람의 생이 끝났다. 딸들이 부르는 "엄마" 소리가 더 애 달프다. 이 땅의 며느리의 굴레는 우리 세대로 끝나기를 소망한다. 일 속에 묻혀 살았던 날들.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쉬시길 빌어본다.


우리는 늘 메멘 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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