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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Jun 11. 2024

아버지 제사, 형제들은 소풍처럼 산소에 갑니다

제사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주말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빛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어둑 컴컴하다. 비 오면 안 되는데... 혼잣말로 중얼 거린다. 다름 아닌 친정아버지 제사를 산소에서 지내기 위해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 지 몇 년째다. 코로나가 오고서 형제끼리 의논해서 내린 결정이다. 제사가 며느리들에게는 무거운 짐이다. 누가 누구를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변한 만큼 우리 생활 풍습도 변해 가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는 전주에서도 한참 가야 하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던 고향 선산에 누워 계신다. 군산에서 남편과 동생은 출발해서 달리는데 봄비처럼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염원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행여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들을 그리다가 참았던  눈물인가 모르 일이다. 다리가 아픈 나는 그냥 겨우 불편함을 참고 함께 가고 있는 중이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제사란 일 년에 한 번 형제들이 만나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며 살아왔던 날들을 추억하고 정을 나누는 자리이다. 칠 형제인 우리는 다행인지 몰라도 아버지가 남겨놓은 재산이 별로 없어 형제끼리 다투는 일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고 걱정을 해 주는 형제의 우정이 두터워 감사한 일이다.


딸 둘은 인천에서 살고, 아들 셋은 전주, 나와 여동생은 군산에 살고 있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부모님 산소를 찾아갔다. 어쩌면 부모님 제사 지낸다는 명분으로 형제들과 소풍 가는 느낌이라서 설레면서 일 년을 기다린다.


산소에는 과일과 마른안주와 아버지 좋아하셨던 약주를 챙기고 간단히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산소 아래 그늘 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쉬기도 하고 산에 있는 매실나무에서 매실도 따고 한참을 쉬면서 음식도 나눈다. 정말 소풍 같은 날이다.

      

   우산 쓰고 부모님 산소에서 제사 준비                              비 오는데 우산을 쓰고 산소에 오르는 형제들 

              

                           제사하는 장면 비가 오는데도 부모님 산소에서 제사를 지낸다


 수십 년을  지내왔던 제사  방법을  바꾸었다


제사 방법을 바뀌고 누구 하나 제사 때문에 힘든 일도 없고 며느리들 불평도 없으니 잘한 선택이라 애써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산소 제사도 처음에는 집에서 제사 지내듯 음식 준비를 많이 했지만 갈수록 간소하게 준비한다. 왜냐하면 여름이라 음식이 상할 수도 있고 준비하는 사람이 번거롭다. 어제는 비조차 내리고 산소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차는 산 아래에 주차해 놓고 천천히 걸어오면서 요즈음 활짝 핀 분홍 달맞이꽃도 보고 산속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도 들으며 옛 추억에 젖어 보는 달콤한 감성을 기대했던 운치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리가 아파 산소에 올라가지 못하고 산소 아래 차 속에 앉아 있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를 맞고 있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내 유년시절 추억이었던 분들도 소환해서 먼 옛날로 잠시 돌아간다.


그립고 애틋했던 그 날들... 가슴이 먹먹해 온다.


비가 내리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번 찾아오는 자식들 그리워 흘리는 부모님 눈물일까, 그분들의 생을 생각한다. 두 분이 결혼하고 칠 형제 낳아 기르며 삶의 굽이굽이, 살면서 좋았던 날보다는 힘겨웠던 날이 많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는 것이 너나 할 것 없이 힘들게 살았던 때다. 지금까지 사셨으면 맛있는 것도 드시고 같이 여행도 하면서 호강을 하셨을 텐데.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왔던 삶을 생각하면 회한에 마음이 저려온다. 다음에 우리가 가고 나면 우리 자녀들도 우리 생각을 얼마나 하려는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존재, 그게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그게 인간 삶의 속성이다,  차창으로 부딧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먼발치 아버지 어머니 누워 계시는 곳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편안하시기를 두 손 모아 본다.


내가 맏이라서 그럴까? 동생들을 보면 부모 마음이 된다. 아버지 기일에는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다 모여 주는 동생들과 제낭들이 고맙다. 남편도 싫다 하지 않고 함께 참석해 주어 고맙고, 모든 일이 고맙고 또 감사하다. 부모님 산소를 찾는 일은 우리의 뿌리인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비가 오기는 처음이다. 하늘에서 하는 일은 누가 알겠는가. 다만 멀리에서 온 동생들이 빗길에 운전하고 올라갈 일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는 살아 있는 한 부모님을 기억하고 형제들과 정을 나누며 살 거란 마음을 다진다. 다음에 찾아오리라 아버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산소를 떠난다.


나의 뿌리인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선산은 고향 같은 곳, 늘 그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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