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멀리 외출은 힘들어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가까운 곳, 걸어갈 수 있는 용산 어린이 정원을 가기 위해 네 사람은 아파트를 나섰다. 딸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딸은 우리 부부가 오면 같이 가려고 미리 예약을 해 놓았다. 용산 어린 정원은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분증도 꼭 지참해야 하고, 소지품 검사까지 철저하게 했다. 아마도 용산 대통령 실과 근접한 거리라서 보안 측면에서 그렇게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 듯하다. 딸 집과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다리 아픈 나를 배려해 사위는 몇 걸음이라도 걷게 하지 않으려 차로 용산 어린이 정원 문 앞까지 데려다준다.
신분증 검사를 마친 다음 처음 만나는 안내소에서 나는 휠체어가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다행히 빌릴 수가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은 완전 장애인이 된 것 같다. 절뚝이며 걷지 않으니 편하긴 하지만 휠체어를 미는 사위가 힘들까 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사람 사는 모든 일은 순간에 일어난다. 내일일도 모르고 사는 우리는 날마다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 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맨 먼저 보이는 곳은 '용산 서가'라는 곳이다. 정갈하게 정리된 책장 서가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냉방 시절도 잘 되어 휴가 온 기분으로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실내에 앉아 밖에 보이는 넓은 잔디광장과 나무들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괜찮다. 나이 들어 기면서 번잡하고 사람이 많은 곳 보다 한가하고 고즈넉한 곳이 좋다. 멀리 피서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용산 서가
서가 안에서 바라보는 잔디광장
용산 어린이 정원은 120년 간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 기지가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함께 이곳은 국민의 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한다. 공원을 정식으로 조성하기 전, 이번 부분반환부지, 임시 개방을 통해 국민께 더 가까이 다 가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문화의 공간, 서로의 생각이 어우러지는 소통의 공간, 더 가까이, 함께 만들어 가는 용산 공원은 어린이 정원으로 국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예전 주한 미군 가족들이 살아왔던 공간을 탈바꿈해 놓은 곳도 있었고 그냥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한 가족이 살았던 주택 앞 뜰 넓은 공간에는 예쁜 꽃들과 잔디들로 가꾸어 놓아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 놓아 아늑한 했다.
주한 미국 장교들이 살았던 주택과 작은 정원에 피어 있는 수국이 아름답다.
따뜻한 공간을
제일 감동을 받은 공간이다. 처음 두꺼운 암막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깜깜한 곳에 꼬마전등 1500개 조명 장치와 수조 전등이 깜빡 거린다. 따스한 불빛으로,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의 미래를 밝히다'는 주제다. 온화는 집이라는 공간의 따스한 온기를 구현한 설치 예술작품이라 한다. 특별한 설치 예술작품에 깜짝 놀랐다. 전구와 물 유리거울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이었다.
한국에 3년간 머물렀던 미 공군 가족 따뜻한 삶의 공간. 전시되어 있는 집기들은 소박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 공군 가족 중 딸의 방, 소품도 손수 짠 털실 블랭킹이 친근하다
넓은 공간을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녔다. 얼마큼 오니 용산 대통령 실이 보인다. 그렇게 말도 많고 사연도 많은 곳 대통령이란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주변 곳곳은 경찰들이 보인다. 분수대가 있는 곳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놀고 있다. 걷다가 가끔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고 팥빙수도 사 먹으며 구경을 하고 다닌다. 돌아올 때는 거리가 좀 있어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간이 이동 차를 타고 입구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