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자 Aug 13. 2024

뉴욕 사는 손자 손녀가 한국을 찾아온 이유  

뉴욕에 살고 있는 큰 딸이 방학을 이용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서울엘 왔다. 지난해 이어 다시 온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몰랐던 엄마의 고향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한국에 가지고 졸랐다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찡해 온다. 그래, 행복 근원은 역시 사랑이 아닐까? 한국을 그리워하는 손자 손녀, 핏줄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끌어당김의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중학생이 된 손자 손녀는 이란성쌍둥이다. 딸이 늦은 나이에 어렵게 시험관으로 낳은 아이들이라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잔하다. 그만큼 많은 사연 속에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두 아이는 이란성쌍둥이지만 누가 보면 전혀 쌍둥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여자아이가 더 커서 누나 같다.  


둘은 어쩌면 성격도 다른지, 여자애는 외양적이고 활발하며 남자아이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품을 가진 아이다. 나에게는 두 아이 모두가 소중하기에 누가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한국말을 못 해 의사소통을 못했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한국말로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정감이 간다. 


한 번은 영상 통화를 할 때다. 손자 손녀가 안부를 물어 오길래 무릎이 아파 걷는 게 힘들다고 말했더니 걱정을 하며 위로를 해 준다. 보통 때는 전화를 잘하지 않은 딸 성격이기에 나도 자주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 소식이지 싶어 일일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걸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머릿속에는 자식들 안부가 궁금하다. 


얼마 전 큰 딸에게서 영상 통화 전화벨이 울린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전화를 누르니 "할머니 무릎 아픈 곳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다. 세상에 언제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애들이 그런 말을 할 만큼 성숙했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잠시 고달프고 힘든 마음도 다 사라질 정도로 흐뭇하고 대견하다.  사람과의 관계는 역시 사랑이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영어로만 말하기에 서로의 감정을 전 할 수 없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서로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으니 한편으로 섭섭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짝 사랑하듯 멀리 있는 손자 손녀를 그리워하면서 지내 오던 차 지난해 서울에 와서 만나고 보낼 때 남편은 손자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헤어지면 언제 만날 지도 모르는 애들, 잘 지내고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울컥해 온다. 


                                                      남편과 손자


손자는 할아버지 품에 안기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마음 안에는 늘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세상에서 부모 아닌 누군가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안정감과 없어서는 세상을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지지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리게만 느껴졌던 손자 손녀와의 마음이 훌쩍 자랐다.  어느 날 딸과 영상 통화 할 때 손자 손녀 보고 "왜 한국에 오고 싶니?"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요"라고 말하는 그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중심은 가장 사랑하는 곳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80십이 넘은 노인이다. 언제 무슨 일과 마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손자 손녀에게 어느 자리에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바뀐다. 사람은 영겁의 세월에 걸쳐 태어나고 사라지는 별의 세계와 비교하면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찰나이며 지구라는 별과 거기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먼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 나이 80세, '딸만 넷' 엄마의 마음은 이렇습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