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으로는 처서가 지났지만 낮에는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연일 더운 날씨다. 맨날 덥다 덥다 하면서 집안에서 에어컨에 기대어 지내고 있는 남편은 답답하기도 하련만 그 시간들을 잘 견딘다. 결혼하고 그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한결같은 남편의 루틴이다. 사람은 본디 자기 좋아하는 데로 살아야지 별도리가 없다.
여름밤이면 더위가 사그라들어 밖에 나가 움직일 만도 하련만 매년 여름이 오면 꼼짝도 하지 않고 요지 부동 집돌이가 되고 만다. 밖에 나가 동네 한 바퀴 도는 산책이라도 하고 가계 밖 의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라도 한 캔 하는 여유와 낭만을 그려 보았지만 결혼 후 지금까지 남편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더우면 땀나는 게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뭐라 할 것인가.
사람은 저마다 자기 좋아하는 습관 데로 살진데 나무랄 일도 아니다. 젊어서와 달리 한집에 오래 살다 보면 서로의 자기가 좋아하는 루틴대로 살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오래전 지인의 따님 결혼식에 갔을 때 주례가 해 주던 말이 생각난다. "사랑은 하되 구속은 하지 말고 살라"는 그 말에 공감한다. 같이 있어도 혼자인 듯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나는 요즈음은 무용연습으로 매일 바쁘다. 어제는 주말 모처럼 쉬는 날이다. 숙제처럼 마늘을 까야하는데, 베란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마늘을 보면 마음이 걸린다. 시간이 있을 때 마늘도 까 놓아야지 싶어 마음을 먹고 시도를 했다. 맨 먼저 마늘 쪽을 내고 뿌리와 마늘 대를 분리를 해서 물에 담근다. 그래야 까기 좋다.
오랫동안 그렇게 마늘을 사서 집에서 껍질을 까서 먹어왔다. 시중에서 까 놓은 마늘을 사 먹으면 편하련만 아직도 그게 적응이 안 된다. 정말 못 할 정도가 되면 그때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집에서 까서 먹는 것이 힘들지만 마음은 개운하다. 남편이 잘 도와주어 가능한 일이다.
마늘을 까고 있는 중인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더우니까 우리 밖에 나가 점심 먹게요." "알았다." 그 말에 나는 반갑다. 남편은 외식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허구한 날 집에서 삼시 새끼를 챙겨 먹어야 하기에 때론 힘겹다. 그렇지 않아도 마늘을 까고 있는 중 점심 준비하려 생각하니 귀찮던 참이었다.
남편은 친구들이랑 가끔 가신다는 우렁 쌈밥짐 자랑을 하셨다. 언제 한번 가보려던 참에 잘되었다 싶어 우리는 우렁 쌈밥집을 간다. 차를 타고 몇 분만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군산은 살기 좋은 도시다. 오히려 외지 사람들은 낚시를 즐기려 군산을 찾는 분들이 많다는 소문은 들었다. 정작 군산 사람들을 그 즐거움을 모르는 듯하다.
하구 뚝 바다가 보이는 식당은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많을 걸 보면서도 그 집의 인기를 알 수 있었다. 식당 안은 제법 넓은데도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메뉴는 한 가지로 우렁 쌈밥이다. 사람도 많았다.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깜짝 놀랐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음식이 나왔는데 푸짐하다. 돼지 불고기에 양배추에 우렁을 무쳐 놓은 음식은 새콤하고 맛있었다.
불고기에 우렁 된장 우렁 야채 무침 반찬도 깔끔하고 가정비도 좋다. 밥 값은 무려 9천 원, 그러니 사람들이 모일 수뿐이 없나 보다. 밥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야 사람들을 기쁨을 않고 떠난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관광객도 찾아오지 않나 싶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소화도 지킬 겸 월명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 계절이 지난 뒤에야 공원을 오게 되었다. 여름이라 더워서도 그랬고 내가 다리가 아파 자연스럽게 산책을 못했다. 오랜만에 공원 나무 그늘로 들어오니 공기부터 다르다. 나뭇잎과 풀들의 냄새도 좋다. 푸르른 녹색들이 아름답다.
월명 공원 새로 생긴 무장애 데크 길
데크길
반가운 것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 본 다음에 찾아오는 평소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알게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공원 산책길은 다른 면모를 갖추고 우리를 맞이한다. '무장애길'이란 데크 길이 월명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길이 마련 되어있다.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테크길은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아직도 더운 날이지만 운동하는 사람들도 간간히 있다. 우리는 걷다가 나무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사진을 찍다가 초록의 자연 속에 흠뻑 취한다. 참 좋다는 말이 나도 몰래 나온다. 신은 우리에게 내일을 약속하지 않지만 나는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온한 일상의 하루가 더없이감사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