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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Dec 01. 2024

80대 부부의 김장이야기... 몇 번이 더 남았을까

김치 냉장고 가득 채워 놓고 자식들이 가져다 먹기 바라는 마음은 여전



겨울이 깊어진 듯 날씨가 매우 춥다. 강원도,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첫눈이 너무 많이 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다른 해와는 다른 눈 소식이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주부들은 맨 먼저 김장 걱정부터 한다. 지금은 김장을 하지 않고 사 먹는 세대가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 김치를 집에서 담그는 세대가 더 많다.


밥상에 김치가 빠지면 무언가 허전하다. 오랜 습관처럼 밥상에 김치가 올라와야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지금까지 김장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니 또 다른 이유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엄마의 손맛인 김치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럴 것이다.


가끔은 딸들이 "엄마 힘들어요. 이제 사 먹을게요"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그러고 싶지 않다. 힘이 들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힘이 들어도 자식들 먹는 김치를 엄마가 해주지 못할 때 느끼는 상실감과 서운한 맘이 더 클 것이다.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워 김치를 담가 놓고 자식들이 가져다 먹기를 바라는 마음은 엄마의 사랑이다.


아직은 해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해가 바뀌면서 내가 드는 생각은 내가 얼마 동안 김장 김치를 담가 줄까, 그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 온다. 항상 하는 소리지만 나이는 못 속인다고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것이 우리 몸 상태다.


남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배추 씻어 놓으면 꼭지도 칼로 다듬어 주고 파도 함께 다듬고 그랬는데 올해는 귀찮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해야 할 청소는 해 주시고 다른 심부름도 해 주신다. 나이는 몸의 변화부터 찾아온다. 남편은 나와 6년이란 차이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도와 달라 조르지 않는다.


천천히 하루는 무 김치, 파김치 담그고 며칠 후에 배추김치를 담갔다. 올해는 매년 배추를 주문하던 곳을 바꾸었다. 배추절임이 마음에 안 들어서다. 배추가 절임이 잘 되어야 김치가 맛있는데 싶어 망설이다가 해남 배추를 주문했다.


배달된 배추, 김장 준비물배달된 배추를 바구니에서 물을 뺀다. 김치 담글 준비물.


배추 배달 오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배추가 오기 전 양념을 다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데 정확히 약속한 시간 안에 배추가 도착했다. 행여 약속을 못 지키면 어쩌나 걱정을 살짝 하면서 못 오면 내일 담그지, 하면서 여유를 부려 본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어찌 다 내 마음 같을까 하고 걱정을 잠시 내려놓으니 초조하지 않고 편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계획되는 대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힘들어도 담담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가고 기다리면 다 지나가도록 되어 있다. 나이 들어 변화하는 마음의 상태다. 초조함보다는 담담함에 더 무게를 둔다. 마음이 평화로워야 사는 것이 지옥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일도 사람과의 관계도 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편하다는 생각이다.


배달 온 배추를 꺼내어 물을 빼기 위해 커다란 바구니에 옮겨 놓는다. 간이 잘 절여지고 배추도 실하고 좋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처럼 정성을 다해 배추를 절여 씻어 보낸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웠다. 나는 배추를 꺼내어 놓고 바쁘지만 택배 상자 주소에 있는 업체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군산 ㅇㅇ입니다. 배추 택배 방금 잘 받았고 간도 알맞게 절여지고 배추도 좋습니다. 김치 잘 담가 일 년 동안 잘 먹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금방 톡에서 답장이 온다. "감사합니다." 작은 배려가 서로의 마음에 온기를 전해 주는 것 같아 잠시라도 마음이 훈훈하다.


나이 탓일까? 힘든 사람을 보면 따뜻한 말을 해 주고 싶다. 특히 택배 하시는 분들 마주치면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럴 땐 남자분들은 "고맙습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하지만 여자분들은 힘든 사정 이야기를 한다. 몇 번 고개를 끄덕여주면 그만이지만 이 또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담아 놓은 김치 담아 놓은 배추김치 파김치 


여태껏 절임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해도 인사할 마음이 든 건 처음이다. 이처럼 수고하는 분들이 계셔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편하게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애틋한 마음이 든다. 아무리 세상 사는 일이 힘들어도 서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데워준다.


올해는 김치를 많이 담지 않아 어둠이 오기 전에 김장을 마쳤다. 동생이 도와준 탓도 있다. 김치를 담가 김치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반찬 걱정을 덜고 일 년을 잘 살아 낼 것 같다. 채워진 김치 냉장고를 보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자녀들 누구라도 오면 마음 놓고 가져가겠지.


더 나이 들고 힘들면 김치 담그는 것도 멈추겠지만 아직은 딸들 가족에게 엄마 김치를 담가 주고 싶다. 몸은 힘들어도 자식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행복하다. 행복은 이처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도 서로 행복하기 위해서다. 딸들의 고단하고 바쁜 일상을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90세가 가까운 남편, 80이 넘은 우리 부부는 얼마까지 김장을 할 수 있을까, 김장을 끝내고 먹는 수육 맛은 우리들만의 약속된 메뉴다. 김장을 마치면 주부는 올해 해야 할 일을 다한 듯 마음이 편안하다. 나머지 시간도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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