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돌아가신 형님 기일
온 세상이 싱그러운 봄날이다. 초록은 더 짙어 가고 산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사람마음을 들뜨게 한다.
이 처럼 좋은 날 지난해 세상과 이별하신 큰댁 형님 기일이다.
제사란 신이 나 신령, 고인의 넋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행위로 알고 있다. 어제는 큰댁 형님이 세상 떠나신 지 일 년이 되는 기일이다. 형제인 우리가 참견을 하지 않아도 자녀들이 제사를 잘 지내겠지만 작은 집 부부와 우리 부부도 함께 참여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 없는 조카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 시댁은 유교문화를 철저히 지켜온 집안이다. 종손인 시댁은 제사가 많았다. 형님 살아 게실 때 무려 일 년에 11번의 제사를 지내고 나면 한 해가 다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혼 전 제사를 한 번도 지내본 적이 없는 생활을 해 오던 나는 그런 문화가 생소하고 힘겨웠다.
그러나 세월 가면서 차차 적응이 되고 약간 힘은 들지만 나름 보람 같은 걸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제사 문화에 재미도 느꼈다. 어쩜 제사라는 명분 아래 산 사람들의 만남의 축제 같은 것이었다.
어느 사이 형님도 연세 드시고 힘겨워 오래된 조상님들의 제사는 묶어서 지내고 회수를 많이 줄여 묶어 지내게 되었다. 제사를 줄여도 우리 집 삼 형제들은 거의 제사를 빠지는 일이 없이 함께했다. 마치 제사가를 종교의식 치르듯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며 온 정성을 다 해 왔다. 제사와 더불어 형제의 우애까지도 더 단단히 지켜왔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제사 때만 되면 조상님들과 시 아버님과 시어머님제사는 우리 며느리들이 주인이 되어 제사 준비를 해 왔었다. 하지만 어제 제사는 형님 제사라서 자녀들이 주관하기에 우리 형제 부부는 참여해서 약간의 도움만 주면 되는 거였다. 큰집에 도착해서 보니까 벌써 딸들과 손녀가 부침개를 하고 다른 제사 음식도 마무리를 해 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우리가 한 세대 뒤로 물러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어느 날 제사를 받는 날이 가까워 왔음에 마음 한편이 싸아해 온다. 흐르는 세월의 변화를 어찌 막으랴 그 저 묵묵히 바라보며 세월의 강을 건너가고 있을 뿐이다. 결혼해서 반세기가 넘은 세월, 사연도 많고 그 시간들을 건너온 나에게도 위로를 하고 싶다.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동안 자녀들은 아직도 부모님을 마음으로 떠나보내지 못해 흐느껴 울고 있다. 어머니를 따라 한 달 후에 갑자기 부인 곁으로 가 버리신 시숙님 생각하면 우리도 슬프고 힘든데 자녀들 마음을 오직 하랴, 모든 것은 살아 있을 때 누리고 되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함을 다시금 알게 된다.
오로지 본인의 삶보다 자식 위한 삶을 살다가 가신 분들, 그 숭고한 희생정신이 고맙고 마음이 아파 자녀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슬픔의 시간도 세월이 가면 색이 바랠 것이다. 마음을 다 잡고 나머지 삶도 잘 살아가는 길 뿐이다. 엄마 없는 조카들에게 따뜻한 안부라도 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제사란 고인의 넉을 기리기 위한 음식을 올리는 일이지만, 산 사람이 만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만나야 정도 깊어지고 사랑도 싹이 튼다. 부모님을 대신 한 큰 조카는 작은 것이라도 아버지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려 애쓴다. 남은 제사 음식을 똑 같이 나누는 것은 가족의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정이다.
우리가 가고 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우리 집안의 제사문화는 우리가 살아 있은 동안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쭈욱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서로의 위로이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