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느끼는 반성
미세 먼지가 많아 공원 산책도 못 가는 날, 오늘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냉장고 청소를 한다. 나는 집안일 중에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냉장고 청소하는 일이다. 청소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 냉장고 문을 자주 열어본다. 이것저것 먹지 않은 음식을 다 버리고 텅 빈 냉장고가 개운하고 기분이 좋은데 그 일 하기기 싫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일 것이다.
주부들은 거의 계절이 바뀌면 해야 할 집안일들이 있다. 계절에 맞추어 옷 정리도 해야 하고 특히 김치 냉장고 정리는 필수다. 지난해 담가 놓았던 묶은 김치도 정리를 해야 한다. 우리 집 오늘 열어본 김치 냉장고 안에는 지난해 담가 놓은 묵은 김치가 쾌 많이 남아 있다. 나이 들면 김치도 잘 먹지 않는데 무슨 욕심으로 김치를 그리 많이 담가 놓았는지,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워 놓아야만 마음이 놓이고 흐뭇하다. 예전 겨울에 김치만 먹고 살아왔던 세대라서 습관일 수 있다.
겨울이 오면 각종 김치를 담가 김치 냉장고를 채워 놓고야 주부들은 일 년 농사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자식들 밥상까지 신경을 쓰며 가져다 먹을 거라고 믿는다. 먼 곳에 사는 딸들은 부모집을 찾는 일도 드문 드문인데 언제 그 김치를 다 가져다 먹을 것인가, 그것은 착각이었다. 김치가 떨어지면 사 먹는 것이 더 편리할 것이다.
김장철 겨울이 오면 싱싱한 무로 석박 김치를 담는다. 입맛 없을 때 물만밥 우적우적 씹어 먹는 맛이라니.
나는 내가 나이 든 사람이라는 걸 잊고 젊었을 때처럼 김치를 잘 먹을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밥상의 김치를 잘 먹지 않는다. 물론 이가 부실한 남편도 마찬가지로 김치 반찬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오늘 묵은 김치를 꺼내 버릴 것과 씻어 김치 찜을 해 먹을 것과 구분을 하면서 혼잣말로
"내가 미쳤지, 버리는 것도 일인데 이게 무슨 짖인지 모르겠다. 올 겨울에는 정말 김치를 담지 말던지 아님 아주 조금만 담가야지" 후회를 하면서 섞박지를 버리려 비닐봉지에 담는다. 식구들이 많으면 그걸 물에 담가 묵은 맛을 조금 빼고 된장에 멸치 넣고 지지면 먹을 만 하지만, 지금은 먹을 사람이 없다. 젊어 새댁일 때 시어님이 봄이 되면 버릴 묵은지를 그렇게 지져 주시면 고기반찬 보다 더 맛있었다.
선호하는 음식도 나이대에 따라 다름을 새삼 알게 된다.
부엌 싱크대에서 김치 버리는 작업을 하는데 남편이 부엌 쪽으로 와서 손을 씻으려 하니 괜히 눈치가 보인다. 이건 돈 들이고 수고하고 또 버리는 일은 무슨 일이야 하고 나무랄 듯할 만도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내가 이처럼 반성하고 있으니 올 겨울 김장은 달라질 거라고 다짐한다.
옛말에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고 내 몸이 올해 다르고 지난해 다르다. 더욱이 지난겨울부터 병원 드나들고 수술하고 몸 상태가 변화가 오면서 집 살림도 순발력 있게 빨리빨리 처리가 안된다. 마음만은 청춘인양 몸을 움직여 보지만 다 헛된 망상이다. 몸이 움직이기 싫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가 빨리 찾아온다.
아프면 나만 힘겹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에너지의 흐름도 세월 따라 변한다. 비우고 간결하게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다.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반성문을 쓴다.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