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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특별한 하루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시골길 드라이브하기

by 이숙자

6월, 숨만 쉬고 있어도 시간은 가고 있다. 맥없이 가는 시간이 아쉬워 붙잡아 보려 하지만 어림없다는 듯 쏜살 같이 달음질을 친다. 계절이 바뀌면서 각종 꽃도 피고 진다. 모든 생물은 저 마다 삶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그들 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사람은 세상과 이별이 식물들처럼 정해진 날은 없지만 결국 우주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피 할 수 없는 진리다.


너, 나 할 것 없이 살아 있을 때 오늘이 마지막인 날처럼 최선을 다 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요즈음 피는 꽃 중에 내가 좋아하는 찔레꽃도 어느 듯 지고 지금은 장미와 금계국이 한창이다. 꽃들은 모양보다는 향기가 사람 마음을 매료시킨다. 꽃들이 피어나면 유심히 살펴본다. 어느 꽃은 떡을 찌고 어느 꽃은 차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 식물 하나에도 애정을 느낀다. 누가 보아주지 않는 작은 것까지 그 식물에 대해 알고 나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자연이 내어 주는 오묘한 진리를 다도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와 꽃들은 신이 내려 주신 선물이다. 진달래가 피면 화전을 부치고 쑥이 나오면 떡을 찌고 뽕잎, 감잎이 나오면 차를 만들고 자연에서 먹거리를 찾아 자잘한 알갱이들로 차곡차곡 내 삶을 채우며 산다. 남에게서 전염된 행복은 오래가기도 하지만 자기 것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행복의 관념은 주관 적이다.


봄이 찾아오고 계절을 마주 할 때마다 나는 설렘으로 마주 한다. 이러한 작은 설렘도 타인이 아닌 나의 주관 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이 듦이란 밖에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내 안에서 스스로 느끼는 아주 작은 소박함이 나를 더 기쁘게 내 안에 오래 머물도록 해 준다.


올 7월이 지나면 남편은 운전 면허증을 반납해야 하고 차도 운전 할 수 없다. 얼미 남지 않은 자가 생활을 즐겨야 한다.


어제 공원 산책 후 남편은

"우리 옥구 쪽 한 바퀴 돌고 가지?"

"알았어요."


남편의 의도를 알기에 나는 흔쾌히 대답을 했다. 시내에서 볼 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면 되겠지만 멀리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을 것이다. 차가 없으면 당연히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고, 그 생각에 벌써 마음 한편이 쓸쓸해 온다. 차로 시골 논길 밭길을 달린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한가롭다. 어느 논은 벌써 모내기를 한 곳도 있고 어느 논은 보리가 노랗게 익어 보기가 좋다.


시골길에서 만난 풍경들


남편이 어릴 때 자랐던 시골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시골집들도 예전과는 다른 멋진 집들이 많다. 어느 집은 앞마당에 꽃이 만발해 너무 예뻐 내려 사진을 찍는다. 햇살은 맑고 하늘을 청명하고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뽕잎을 따면서 참 좋다. 이런 날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음이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남편이 살았던 고향집터를 돌아보면 남편은 언제나 할 말이 많아진다. 살아왔던 추억을 꺼내는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차는 의도치 않아도 익숙한 곳을 찾는다. 남편이 살았던 곳과 조상들이 묻혀있는 산소길을 찾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지, 잡초가 무성한 흙길이 세면으로 포장을 해서 깨끗하다. 그곳은 사람 사는 곳과 연결이 되지 않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이지, 의아해서 한참을 그 길을 걸었다. 날씨가 더워 산소까지는 오르지 않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이다. 10년이 '상전벽해'가 된다는 말이 지금은 일 년이면 지형이 바뀌는 현상을 본다. 참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새로 포장된 말끔한 길이 왜 나는 더 쓸쓸하게 느껴질까. 이 길은 산과 연결된 산소에 다니는 사람들 길이다. 마치 그 길은 산 자와 죽은 자을 이어 주는 통로 같다


누가 이 길을 얼마나 다닐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 시간, 하루 있었던 시간들이 머리에서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왜 산소 가는 길이 깨끗하고 좋아졌는데, 그 길이 마음 가운데 잔상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슬픔이 밀려오는지, 슬픔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괜스레 눈물이 나오려 한다. 정말 이놈의 감성은 때론 나를 힘들게 한다.


우리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가면 그 길을 오고 가면서 많은 날 얼마나 외로움을 견뎌낼지, 나이 듦은 빛나는 환희보다 왜, 아픈 이별이 두려운지, 나이란 외로움이 먼저 사람 마음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또한 가슴 벅찬 환희를 느끼기도 하고 감정의 변화가 내 마음 안에서 요동을 친다.


잠시 내려놓았던 잡념들을 주워 담는다. 미리 걱정을 하는 일은 좋지 않은 사고다. 사람은 본질 적으로 홀로 왔다가 홀로 간다. 홀로 있는 시간은 외로움이 약해진 상태다. 어쩌면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도 고독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앞만 보고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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