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님 돌아가신 지 38년째 형제들과 만남
친정아버님 돌아가신 지 38년째, 어머니 돌아가신 지는 3년째다. 아버지 제사 방법을 바꾼 해는 올해로 4년째다. 요즈음은 사람 사는 일이 예전과는 다르게 모두가 바쁘기도 하지만 힘듦을 피하려 한다. 바쁘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지 모르지만 형제들도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 특히나 제사를 지내던 남동생들 안식구가 아프면서 제사를 지내는 일에 변화가 찾아왔다.
천주교 신자 셨던 어머니와 가족들은 부모님 기일이 오면 성당에 미사 예물을 넣는다. 미사 예물을 넣는 것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위로말씀을 신부님이 강복하시는 의례다.
결론 적으로 제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 계기는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할 때였다. 코로나 시기부터 형제들은 부모님 산소에 모여 간단한 과일과 아버지 좋아하는 술 한잔 따라놓고 부모님을 추억한다. 예전 삶은 고단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살아왔던 어린 시절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도 불편한 할 수 있다. 내가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자칫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 지금은 많이 자제를 한다. 형제도 부부도 이제는 서로의 입장이 되어 배려하고 살아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동생들 나이 70이 넘으면서 몸들이 아픈 사람이 늘어나면서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집이 아닌 산소에 모여 부모님을 만나는 날은 기다림과 설렘으로 마치 여행하는 느낌이다. 여동생 부부 두 쌍은 인천에서 오지만 제일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린다. 매년 찾아오는 부모님 산소는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오던 조상들이 묻힌 선산이며 고향이다. 어려서 자주 다니던 곳 추억과 삶의 사연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푸근하고 그리운 얼굴들이 떠 올라 한편으로는 울컥하고 세상 뜨신 분들이 보고 싶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논들, 가을이 오면 할아버지는 논에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논둑에 원두막이 있었다. 혼자서 원두막에서 새를 쫓던 나에게 할아버지는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한 두 개를 캐서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의 손녀 사랑을 철이 들고서야 알았다. 할아버지 생각에 문득 그리움이 차 오른다.
애기 똥풀 낮 달맞이꽃
찔레꽃 애기 똥풀
산아래 차를 주차하고 산소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마주 하는 야생화 꽃들도 반갑다. 천천히 남편과 동생은 옛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다. 내가 얼마동안 부모님 산소를 찾으며 동생들과 만날까,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들이 소중하며 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조차 애틋하다.
부모남 산소는 산 중턱 가파른 곳이라서 산소에 오르는 일이 나에게는 버겁다. 지난해부터 무릎이 아프고 걷는 것이 조금은 불편한 상태다. 동생들 부축으로 산소에 오르니 숨이 차다. 조금 불편해도 일 년에 한 번 찾아와 부모님을 기억하며 형제들과 정을 나누는 일은 나에게는 멈출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다.
비가 온다던 날씨는 햇살이 맑아 다행이었다. 우리는 산소에서 내려와 오래전부터 한번 찾고 싶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큰집이 살아오셨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얼마 만에 찾아온 곳인가. 매번 산소만 다녀갔지 동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동네 초입을 들어가면서 달라진 동네 모습에 놀랍다.
예전 동네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모두가 새로 지은 멋진 전원주택들과 동네 길 주변은 온통 꽃밭이다. 이곳을 찾은 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헐리지 않는 집은 딱 두 채였다. 여동생의 친구집인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던 곳과 또 다른 곳, 변하지 않은 곳은 시제는 지내던 재실 뿐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예전 조 부모님이 살던 큰집은 온 데 간데없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이 있다. 다행히 마당에 있는 주인에게 물으니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8년째라 한다. 이 동네는 산아래 아늑한 시골 마을이다. 그때 그 시절은 전기는커녕 수도 물도 나오지 않아 샘물을 길어다 먹던 곳이었는데 이 처럼 변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옛날 큰집은 마당이 넓었고 뒤뜰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고 담은 돌담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늘 소꿉장난을 하면 놀았던 곳이다. 집도 꽤 넒었는데... 모두가 자취 없이 사라졌다. 동네도 전혀 예전 모습이 아니다. 50년이란 세월 이토록 삶의 현장이 바뀌다니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마음속에 늘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해 온 내 마음 안에 고향이 사라졌다.
차라리 찾아가 보지 말았을 걸... 첫사랑은 나이 들면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아쉬움만 안고 우리는 돌아 나와 점심은 운암 저수지 옥정호 주변 매운탕을 먹고 전주 시내로 나와 한옥 마을을 돌아 구경하고 온 사람, 다리 아픈 나는 동생집에서 쉬었다. 날씨는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동생들과 막걸리와 두릅 전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오늘 형제들의 만남은 끝이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