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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겹벚꽃의 추억

by 이숙자

이 글은 겹벚꽃이 피었을 때 써 놓고 저장된 글을 이제야 발행합니다.


어김없이 봄이 가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이별을 늦추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자연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염없이 지는 꽃을 바라볼 뿐이다. 산책길 걷다가 꽃잎이 휘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몰래 동심초 노래 한 구절이 떠올라 흥얼거려 본다.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동심초는 춘망사라는 시를 우아하게 번역한 시이다. 한 여인이 떠난 연인과의 화려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봄이 오자 연인과의 재회를 염원하는 시라고 한다. 그 의미와 뜻도 모르면서 나는 소녀시절 그 노래를 좋아해서 가끔씩 부르곤 했었다. 아마도 외로움을 견디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일찍이 떨어져 독립해서 혼자 살아야 하는 삶은 고달프고 외로웠다.


사람에게 외로움은 병이다. 슬픔이기도 하고, 유난히 감성이 많은 소녀였다. 그 성향이 지금까지 나를 감싸 안고 살아오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마음 안에 똬리를 틀듯 외로운 방 하나가 내 안에 문학의 씨앗을 안고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늘 내 안의 나와 대화는 때로는 고독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외로움을 견디는 일은 가정을 가지는 일이었다


1969년 4월 22일 겹벚꽃이 만발하던 날 나는 결혼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나는데 차창으로 겹벚꽃 잎이 휘날리듯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마음은 왜 그리 서글펐는지, 절절한 사랑 없이 몇 번 보지 않은 신랑과 결혼을 하고 내 청춘이 다 끝난 듯한 허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년 겹벚꽃만 피면 결혼했던 날 추억이 살아나서 마음이 아련해 온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56년, 반세기가 넘은 길고 긴 세월을 이어 오고 있다. 올해도 여전히 겹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월명 공원 산책을 했다. 겹벚꽃은 우리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도록 추억을 불러오는 꽃이기도 하다.


얼마나 남편과 함께 겹벚꽃을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 같이 보는 꽃이 소중하고 반갑다.

지는 꽃잎이 아쉽지만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안녕을 한다. 잠시 이별은 또 다른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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