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한 해의 마무리
12월은 한가롭게 미뤄 두었던 책이나 읽으며 여유롭게 보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12월이 돌아오고 나는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은 마치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마무리가 남았던 것이다. 12월, 일 년을 마무리하는 달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연말이 돌아오면서 그 많던 일의 마무리를 위해 계단 오르 듯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시 낭송 모임 마무리를 하는 '시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뒤 돌아보건대 일 년 동안 시 낭송 모임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를 만나고 살아왔던가. 세상사 복잡해도 시를 가까이하면서 살아왔던 일 년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시를 좋아하고 만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득해 온다.
삶이 힘겹고 어려워도 그걸 견디는 힘은 마음 안에 남아 있는 시어들, 한마디 한마디가 나 에겐 위로였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몸의 변화로 잦은 병원 출입과 수술, 입원 거듭된 힘겨운 시기를 시가 있어 그 시기를 잘 넘겼다. 어쩌면 시는 혼자인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듯 외로움을 견디도록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기도 했다.
사는 일은 하루하루 씨줄과 날줄을 역어 가는 일이다.
시 낭송 모임은 며칠 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콘서트' 행사를 가족과 지인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진행했다. 낭송 자리는 조용히 진행되었지만 마음 안에서는 소리 없는 울림이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다. 낭송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 안에 따뜻한 둥지하나를 짓고 아름다운 기억을 저장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의 언어들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와 한해를 잘 살아낼 수 있었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주었다.
행사는 오후에 하지만 나는 아침부터 서두른다. 머리도 감고 세팅도 말고 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도 하고 한복까지 갖추어 입었다. 오래 시 낭송을 해온 회원들은 시 낭송을 할 땐 무대 의상으로 멋진 드레스를 입고 낭송을 하지만, 나는 다도 할 때 입었던 한복들이 많아 그 한복을 시와 맞추어 알맞게 골라 입는다. 시 낭송 의상은 정해진 법칙이 있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세월이 가고 예전과 달리 행사가 돌아오면 미리 신경이 쓰인다.
시 낭송은 5부까지 20명이 회원 모두가 낭송을 한다. 오랫동안 시를 좋아하고 낭송해 왔던 기라성 같은 실력을 보여주는 회원들의 시간이다. 시 낭송 콘서트 행사는 회원들 각자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씩 선택해서 오랫동안 외우고 몸 안에 채득하고 그 감동을 풀어내는 시간, 시 낭송도 예술의 한 분야다.
시는 어느 시나 시인의 철학과 인생이 담겨있어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감동을 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시를 낭송한다. 시는 시인이 쓰지만 그 시를 대중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것은 시 낭송가의 몫이다. 그만큼 낭송가의 이해와 실력에 따라 시는 다른 색의 옷을 입고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노래가 그러하듯 시 낭송도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점심을 먹고 리허설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어찌어찌 잘못되어 행사장이 바뀌고 요란스럽다. 어쩔 수 없이 장소를 바뀌어 군산세관옆 넓고 운치가 있는 정담이란 찻집에서 시 낭송 콘서트를 진행했다.
시 낭송을 시작되고 조용히 앉아 듣고 있는 관객들도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일 년 그 숫한 날 시와 함께했던 날들을 마감하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또 앞으로도 시 속에 삶이 익어 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취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더 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나는 그날 곽제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라는 시를 낭송했다.
사평역에서 / 곽제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 송이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 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많아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략>
이 시는 기다림과 외로움이라는 사랑의 변주 이면서
어쩌면 삶의 지친 군상들을 기차역이란 특별한 공간에서
표현해 내지 않았을까 하고 시인의 마음을 추론해 본다.
어느 시기부터 나는 이 '사평역'이란 시를 좋아하고
어느 곳을 가나 이 시를 낭송을 하는 애송시가 되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나이 대라서 시의 배경과 그곳 풍경에 공감하는 의미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