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크리스마스이브 날, 남편의 숙모님 빈소에 다녀오다

by 이숙자

부고 가 톡으로 왔다. 요즈음은 전화도 아닌 톡으로 청첩장도, 부고장도 다 알리는 세상이다. 오지 못하면 돈이라도 넣으라고 말하듯 계좌번호까지, 물론 그게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 사실이 때론 불편한 마음이 슬그머니 든다. 부고, 고인의 이름이 낯설어 남편에게 물으니 남편의 외숙모라고 한다. 결혼한 여자들은 보통 시댁 어른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다만 외숙모, 외삼촌, 고모도 그렇고 친척 존칭으로 부른다.


시어머님 이름조차 나중에 돌아가시고야 알았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나이 팔십이 넘으면 결혼식장도 장례식장도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나이 든 분들은 세상에 남겨질 날이 길지 않는데 남의 장례식장에 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민망한 일일 것이다. 결혼 식장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하얀 해 가지고 축하하는 자리에 끼어 있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래 저래 나이 듦이란 가려야 할 것이 많아 외롭고 삶의 뒤안길로 밀려난다. 그러하므로 혼자 있는 고독은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고 단단할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가족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뒷방 노인, 이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일에 상관 말고 지켜보아 주는 것.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는 그리움의 거리다


한 새대를 풍미하고 함께했던 주변 분들이 세상과 이별하는 횟수가 빈번하다. 부고 톡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싸아해 지면서 겨울바람이 불어오듯 몸도 마음도 시리다. 이제 우리 차례가 왔구나 싶어진다. 인간의 생과 사는 신 만이 관장하는 일이라서 언제 무슨 일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지 못한 채 묵묵히 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은 언제까지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없고 때가 되면 세상과 이별한다. 그 시기가 조금 길고 짧을 뿐이다. 어제 부고 온 남편의 외숙모는 구십이 훨씬 넘었으니 장수했다고 볼 수 있다. 장례식장 영정 앞에서 마주한 그분의 모습을 남편을 먹먹한 시선으로 그 분과의 추억을 상기한다. 자식들도 잘 모르는 일상들.


연세든 어머니의 부재, 자식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나와 남편의 나이가 적지 않다 보니 여려 생각이 겹쳐진다. 어찌 됐건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절박한 문제다. 몸이 아파 오래 병석에 누워 있으면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다.


보통 나이 든 노인들 생각은 공통적으로 어느 날 잠자듯 소리 없이 세상과 이별하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우리 부부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의 감각이란 칠십 대 생각과 팔십 대 느끼는 마음의 자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무엇을 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물건에 대한 욕구도 사라지는 게 나이다.


장례식장에서 전주에 살고 있는 시동생 부부를 만나 우리는 고인에게 인사만 드리고 외식을 하자는 시 동생 부부와 다른 장소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산 사람은 또 산 사람 만의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형제지만 일 년이면 몇 번 만날 수 없어 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하다.


남편 한분뿐이 남지 않은 형, 맛난 음식으로 마음을 대신한다. 멀리 살고 자식들과는 만날 수 없어도 형제끼리 지만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마음의 허기도 채운다. 이 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형제가 있음에 가슴 뭉클한 시간을 나눈다. 연말 이 돌아오면 더욱 쓸쓸한 형부부를 챙기는 시동생 부부의 마음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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