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요
그냥요,라는 말은 어떠한 작용을 가하지 않거나 상태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
아무 뜻이나 조건 없이, 그대로 줄곧. 등 별 뜻 없을 때 쓰이는 부사라 한다.
왜 그럴까, 요즈음 사람들은 가끔이면 그냥요라는 말로 대신하며 긴 설명을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냥요,라는 말이 통용되는 건 아니다. 공적인 만남에서는 명확한 단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집안에서나 이물 없는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가끔씩 쓰이는 단어다.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관계다.
나도 어느 날부터 가끔 그냥이란 말을 사용할 때가 있다. 때론 무엇이라 굳이 설명하기 싫을 때, 아니 긴말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그 말을 종종 쓰고 있다. 그 말이 주는 의미가 애매하면서도 꼭 집어 말하지 않아도 상대도 어느 정도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한다. 굳이 중요하지 않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지난봄이었다. 갑자기 오마이 뉴스를 통해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자은 제의가 왔었다. 난 내용도 모르고 승낙을 하고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서 신경을 써야 했다. 위 수술을 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몸도 아직 완전히 회복이 덜 된 상황이었다. 내가 선택을 잘못했나 하는 후회도 잠시 밀려왔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회는 소용없는 일이다.
매일 촬영팀 막내 작가하고는 카카오톡으로 진행상황을 서로 연락하던 때다. 몇 월 며칠 작가님과 촬영하는 피디님들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을 듣고부터는 밤에 잠을 잘 못 들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준비해 야 할 것. 우리 집이 아닌 시골 큰댁에 가서 촬영을 해야 해서 더 복잡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잘 해내야 했다. 촬영팀이 군산에 온다는 날은 비가 오고 날씨가 으스스 추운 날이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해 군산에 10시쯤 도착을 한다고 말한다. 분명히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올 텐데 이 사람들을 어쩌나, 그 생각에 전날에 집에 있는 찹쌀을 담그고 찰밥을 찔 준비를 해 놓았고 대추도 사다가 놓고 쑥도 한 줌 뜯어다 놓고 화전 부칠 준비를 해 놓았다.
집에 손님이 오면 밥 먹고 차 한잔 하면서 화전이라도 내놓아야 할 듯해서다. 아는 것도 병이다. 모르면 그냥 왔다가는 가 보다 하고 말았을 일, 나는 생각이 많아 일을 벌이고 있다. 찰밥찌는 것이야 불이 알아서 해 주는 거 지만 화전 부치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내가 불옆에서 정성을 다 해야 하는 작업이다.
정확히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그분들 ( 작가님, 피디님 ) 들이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아직도 화전을 부치고 있는데 마음이 바쁘다. 우선 다실로 손님들을 안내하고 화전을 마무리했다. 막내 작가가 내 곁으로 오더니 "촬영하는 날도 아닌데 왜, 화전을 부치시는 거예요?" 하고 묻는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뭐라고 긴 설명이 구차해서 "그냥요"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환대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어쩌면 그냥이란 말이 애매하게 자기의 의사를 똑 부러지게 표현하는 말을 아니지만 그 말에는 여백과 넉넉함이 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똑 떨어지는 샘법으로만 살아간다면 얼마나 팍팍하고 정이 없을까.
찰밥은 이미 완성이 되었는데 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새로 사다가 준비해 놓은 락앤락 통에 4 사람이 먹을 양만큼 넉넉히 담고 사다 놓은 김과 종이컵까지 챙겨 차에 올려 주었다. 아무리 밥이 흔한 세상이지만 형편에 따라 배고픔을 참고 일하는 것은 슬프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나이 든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럴까? 내가 조금 수고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넉넉하고 따뜻한 세상이 될 텐데, 나는 세상을 살 만큼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냥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사회생활에서는 물론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인 것은 안다.
그냥, 이라는 단어를 버리는 것은 단순히 말버릇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동적이고 모호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명확한 이유와 목적을 부여하는 삶의 태도 변화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사회 생활하면서 새겨 두어야 할 말이라 한다. 참 서로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이분법 사용 설명이다.
그러나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좁히고 편하게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는 일이 어쩌면 자로 잰 듯 산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냥, 이라는 말 / 이재무
그냥, 이라는 말이 좋아졌다
임의로운 사이에 주고받는 말
심드렁할 때 딱히 심정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사는 일 고만고만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쓰는 말
평양냉면처럼 도라지나물처럼 같이 심심한 말
오신채 없는 절밥처럼 싱겁고 오래 사귄 연인처럼 친숙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묵묵부답에 가까운 말
어때? 그냥!
때로 시멘트처럼 단단한 대답과 확신은 외려 불신을
불러온다
나이 드니 그냥, 이라는 말이
그냥 좋아졌다
나도 그냥이라는 말이 좋아졌다. 그냥이란 나이 듦의 헐렁한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