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워 주는 일상들

새해부터 그린 그림

by 이숙자

사람의 습관이란 참 무섭다. 배우는 것을 쉬지 않고 살고 있으니 나도 무엇이라 정의 내리지 못한다. 지난 연말까지 몇 달은 너무 바빠 어반스켓을 잠시 쉬었다. 내가 모든 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이 허락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새해가 되면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젠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살겠노라고 마음으로 다짐을 했지만 사는 일이 마음대로 실행되는 건 아니다.


지인이 말랭이 마을 책방을 정리하고 월명동 주택단지에 집을 사서 책방을 확장 개업하고 '인문학당'이란 이름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그 모임 안에서 공부하고 싶은 여러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 중에 분야별로 실력이 되는 사람이 방장이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회원 가입을 하고 공부하는 형태다.


나는 그동안 관심은 있지만 여러 여건상 배우지 못했던 분야를 선택했다. 지난해 시 필사는 충분히 했고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디카시 쓰기. 펜화 그리기, 그리고 영어 회화 그렇게 세 과목을 선택했다. 더 많은 걸 하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다.


전문가와 하는 동아리가 아니라 그만 그만한 분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주제라서 큰 부담은 없다.

그곳에 모인 분들은 분야마다 실력이 있고 도전하는데 남다른 열정이 있는 분들이다. 거의가 시 낭송 회원들이라서 낯설지 않아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


지금 하고 있는 어반스케치, 시 낭송, 목요일 한길문고 글쓰기를 더하면 말인즉은 '가지랑이가 찢어질 것 같다'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라 폭소를 했다. 사람 사는 일은 항상 기회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놓쳐 버리는 일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내가 언제 하고 싶은 걸 다시 해 보랴 싶어서다.


배우며 사는 일은 어쩌면 꾸준히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 나이에 뭐가 그리 배우고 싶고 공부가 즐거운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노는 걸 별로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공부하는 주제의 대화와 그냥 수다와는 차이가 있다. 수다가 전적으로 잘 못된 거라는 지적은 물론 아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삶의 가치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점을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해야 할 그날 일에 대해 일정을 챙긴다. 어떻게 하면 능률적으로 하루 일과를 잘 소화할지, 그 순서부터 마음으로 정한다. 다행히 오랜 살아온 세월은 해야 할 일 속을 안다. 일속을 안다는 것은 일이 꼬이지 않도록 시간 배정을 잘 조율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 처럼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음도 다행히 체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 삼시 세끼 밥 차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잊지 않는다.


1월 달에 그린 그림들


한 동안 손을 놓았던 어반스케치 그림은 그리려 하니 막막했다. 종이 위에 그려 내야 할 이야기, 하얀 종이를 놓고 고심을 한다. 노력하지 않고는 결과가 없다. 새해 1월부터는 결석을 하지 않고 열심히 그렸다. 종이 앞에 좌절하던 마음이 차츰 달라진다. 선생님 도움 없이 그림을 혼자서 그린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다가 밤 12시를 채우는 일도 있다. 이제야 그림 그리는 것이 조금 재미있다. 그림만 보면 막막했던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로워 진 느낌이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에 흐뭇하다. 하얀 종이 위에 내가 그리는 대로 딴 세상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려면 마음이 그냥 평화롭다.


지금까지 해 왔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아직도 멀었지만, 마음 안에 오는 갈등으로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둘까 망설일 때도 있었다. 아마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될 일도 아니고 왜, 이 처럼 그림을 가지고 내가 힘들어할까? 그 마음이 오락가락 내 안에서 나를 힘들게 했다.


욕심이었겠지,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젠 어느 만큼 말랑말랑 함을 느낀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시나브로 내 감정과 마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야 어느 정도 그 일을 조금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걸 살아온 경험에서 알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즐기자.


이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하면서 내 빈 가슴을 채우고 살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의 일상을 품고 있는 멋진 어휘 하나쯤 찾아오겠지

하고 기다림도 어느 먼 곳의 그리움 일 것이다.


햇살 가득한 방 안에서 고요와 함께 컴퓨터를 켜 놓고 글을 쓰는 순간, 책상 가득 늘어놓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나를 살게 하는 시간들이다. 한 없이 고요하고 마음이 평화롭다. 내가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다. 80십이 훨씬 넘긴 나이지만 나는 외로움을 느낄 겨늘이 없다. 오히려 나는 혼자서 즐기는 고독한 시간이 좋다. 그 고독 안에서 나는 나답게 살고 있음에 가슴 가득 충만하다.


나의 이 생을 누가 살아 줄 것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