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피었습니다
봄이 오는가 했는데, 행여 멀리 떠나려는
연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머뭇 거리듯
어젯밤 봄비가 눈으로 변해 내린다.
낮에 아파트 화단에서 매화 핀 모습을 보았는데
누구의 시샘일까, 잠시 복잡한 마음은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인다
매화꽃이 추워에 져 버리면 어쩌나 마음 졸이고
아직 매화와 제대로 해후도 못했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매화 한 송이가
봄이라고 먼저 문을 열었다.
봄이 오고 매화가 피면 꽃을 따다가 찻잔에 띄워
천년의 고요와 만나는 순간, 봄은 내 안으로 찾아와 머문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80년이 넘은 세월을 살아온 인생이 이제 와서 무엇이 그립겠는가.
무심함으로 마음이 메말라 갈 즈음 기다림 뒤에
찾아와 기쁨을 선물해 주는 친구 같은 자연물이다.
어디에서 받지 못한 위로를 매화를 띄운 차 한잔은 위로다.
내 안에 머물던 아픔은 매화 띄운 차 한잔이 위로다.
설한풍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온몸으로 밀어낸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는 어디에서 오늘 걸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조용히 봄의 이름을 부르는 매화
향기 한 줄기 따라 봄이 천천히 걸어온 듯 반갑다.
매화 디운 차 한잔,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