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모임에서 식전 행사로 3.5 만세 운동의 연국을 하다
어제는 올해로 제107년째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해다. 군산 3,5 운동은 호남 최초의 일이다. 군산 3.5 만세운동은 김병수( 군산 영명학교졸업/당시 세브란스 의전학생)가 1919년 2월 26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매를 전달받아 군산 영명학교 스승인 박연세, 김두열에게 전달함으로써 구체적인 거사가 시작되었다.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수십 장을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비밀리에 착수하여 서래 장날을 기하여 전개하려 했으나 비밀이 누설되어 주모자들이 군산 경찰서로 잡혀가고 만세운동이 좌절될 뻔했으나 다행히 김윤실 교사를 중심으로 격분한 학생들이 들과 시민들이 일어나 경찰서로 붙들려 간 선생님들의 석방 운동이 결국 만세 시위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학생들을 진압하려 했으나 성난 학생들과 시민들은 들풀처럼 만세 운동에 동참하고 나중에는 교인들과 직장인들까지 합세, 100여 명으로 시직 한 시위는 500명으로 늘어나면서 성난 노도와 같이 수많은 군중이 일어나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계속되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득세 중심도시 속에서 자주독립을 확고한 의지를 힘 있게 알리며 꽃 피운 호남 최초의 3.5 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이 운동은 군산의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의 긍지가 되었다. 애국 애족의 항일항쟁운동으로써 호남지역 3.1 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거사가 호남에서 최초로 일어났던 것이다.( 군산의 3.1 운동사)
우리 시 낭송 모임에서 는 몇 년째 3.1절이 돌아오면 3.1 운동사에 설명한 주제를 가지고 연극 극본을 쓰고 감독, 연출도 우리 시 낭송( 채영숙 회장)의 하신다. 우리 모두는 주부이며 아마추어 연극인이지만 마음과 열정은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책임감이 강하다. 우리는 온 마음으로 한 달여 맹연습을 하고 어제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군산 3,1 운동 100주년 기념관 앞 무대는 태극기를 들고 거리 행진을 마치고 돌아온 시민들이 잔디 위에 마련한 의자를 꽉 채운다. 모두가 태극기를 든 군중에게도 그 열기가 느껴졌다. 식전 행사로 우리 시 낭송회원들은 모두가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혼신의 힘을 다해 3.5 운동이 일어났던 군산 이야기를 연기했다.
연극 중에 총을 맞고 쓰러진 일본군을 보고, 무대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때 객석의 시민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우리는 하나 된다. 순간 감동으로 울컥하고 목이 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일제 36년 동안 나라 잃은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를...
마치 3.1절 그날을 재현하듯 모두가 나라 잃은 슬픔을 공감하면서 우리는 한 마음이 된다. 3.1절이 돌아오면 대한 독립이란 말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나라는 우리의 소중한 자존감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은 커다란 것이 아닐 것이다.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법을 잘 지키며 자기 자리에서 열심 살아가는 일.
어제, 우리 회원들은 아침밥도 먹지 않고 새벽같이 행사장에 모여 리허설을 하고 한 마음이 되어 회장님의 의견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 시낭송 회원들은 비록 살림을 하는 주부들이지만 3.1절처럼 의미 있는 행사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가치를 마음깊이 새겨본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면 세상이 조금 살만 할 것이다.
옳은 일을 위해서 작은 마음들이 모여 군산의 3.5 만세의 시작점이 된 곳. 새삼 하늘에 계신 그분들의 고귀한 나라 사랑을 배우는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