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팽나무

황석영 소설의 주인공 하제 팽나무 할매

by 이숙자

2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엔 김사인 시인님의 근대 시인 강의를 듣고 점심 먹은 후 곧바로 군산 하제 마을에 있는 팽나무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 나는 군산에서 살게 된 세월이 58년째 되었지만 소문으로 만 듣던 하제 마을 팽나무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는 시내에서 30분 남짓이면 찾아가 볼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은 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생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아마 관심 밖이지 않았나 싶다. 글을 쓰면서 지역의 역사와 여러 가지 삶의 형태와 관심의 대상이 달라졌다.


강의를 듣던 2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팽나무 앞에 도착하고서야 왜 팽나무에 대해 소문이 많았던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름드리 맨 몸으로 우람차게 서 있는 팽나무는 위풍당당한 자세로 의연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랍고 숙연해진다.



세월의 무게를 겹겹이 쌓았을 팽나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견디고 이 나라 역사까지도 몸 안에 담아 왔을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 위엄에 뭐라 표현하기 조차 못 할 정도로 말문이 막힌다. 이 팽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팽나무 중 가장 수령이 오래된 나무라 평가되고 있다. 진즉에 관심을 가지고 돌 보아야 했을 팽나무, 2024년 뒤늦게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때는 600여 가구 주민들이 살아왔던 삶의 터전이었던 곳, 미군 공군기지 확장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한 하제 팽나무였다. 팽나무가 서 있는 하제 포구는 공간이 지닌 하제 마을이란 현재성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 있는 주민의 살아왔던 집터에는 감나무가 남아 있고 대나무도 눈에 띈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하제 마을 주민들이 살아왔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새 만금 간척지 사업으로 포구가 사라지고 새들의 천국이던 염전마저 사라지고 미공군 확장으로 하제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곳이라 한다. 공항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수라갯벌까지 사라진 이곳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자연의 생태계가 사라지면 이 피해는 고스란히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걸 왜 모르는가



팽나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도 깜짝 놀랐다. 이 처럼 오래된 나무들이 이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의연하게 서 있는 걸 보면서 마음 한편이 싸아하게 아려온다 미군 비행장 확장이란 미명아래 우리의 옛땅을 내어 주고 우리 국민을 은 이리저리 흩어져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되었다.


하제 팽나무는 황석영작가의 소설 할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바다를 바로 지척에 두고 있어 예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팽나무에 배를 묶어 두었다는 말도 있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나무의 수피조차 구부러지고 이곳저곳의 상처는 살아온 세월만큼의 상흔을 말해 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살았을 때는 신성하게 여겨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제사를 지내 듯 음식을 차려 놓고 주민들의 안녕과 소원을 빌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화합을 나누기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다.


흘러간 시간이지만 그날들의 모습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오래된 시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어 그 이야기가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된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말 못 하는 나무지만 오랜 세월을 견뎌온 팽나무, 함께 해 왔던 그 사람들을 기억하리라.


우리대로 의식처럼 손에 손을 잡고 팽나무를 한 바퀴 돌아보고 소원을 빌었다. 온갖 비바람을 맡고 살아온 팽나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의연히 서서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모르는 걸 알아가는 시간은 소중하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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