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산책' 책방에서 김사인 시인의 강의를 듣고
삶의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2월이 돌아오면서 목요일이면 근대 시인의 강의를 들었다. 오전 10시에 시작이라서 아침부터 서둘러 발걸음도 가볍게 '봄날의 산책'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 들으려 가는 발걸음은 마치 학생으로 돌아간 듯 설렌다. 나는 내 삶 가운데 가장 즐거운 일은 공부하는 시간이다. 공부를 하면서 몰랐던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고 흥분되는 일인지, 그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은 내게는 없다.
시인님의 강의 시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강의 듣는 회원님들
군산 '봄날의 책방'은 말랭이 마을에서 4년 동안 경험했던 시간들을 밑거름으로 말랭이 마을 산 아래 월명동에 단독주택을 사서 책방 문을 열었다. 책방 문을 열고 책방지기는 맨 먼저 실행한 것은 인문 학당이란 이름으로 회원 모집을 하고 여러 동아리를 만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문 학당을 주 측으로 희망하는 분들은 김사인 시인님의 근대 시인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처음에 30명쯤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전국에서 김사인 시인님과 인연이 된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 대구' 세종' 울산' 전주에서 팬들이 모이고 책방 강의실이 부족할 정도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김사인 시인의 자신의 살아왔던 내공이 느껴졌다. 주옥같은 말씀을 들으며 전율이 느껴진다.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이 오면 느끼는 그 기분을 알았다. 장소가 어느 곳이든 무슨 관계가 있으랴, 시인님의 특유의 어눌한 말씨조차 여백으로 느껴져 좋았다. 가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시인들이 견뎌왔던 어려움을 말씀하실 때는 그 시인에게 빙의가 되는 느낌이었다.
시란 최선의 말이다라고 한다. 시는 불투명한 착잡성으로 살아있다. 또한 삶의 기운을 보전하는 힘이 있다. 시를 낭송할 때도 온몸으로 스며들게 하듯 소리를 내어야 한다. 근대 시인 네 분 강의, 첫 번째 강의는 근대시인 네 명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일대기였다. 네 분의 시인들이 살았던 시대는 일제 강점기 역동의 시대였고 그만큼 사회는 살기가 힘들었고 고뇌에 찬 시인들의 삶을 말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첫 번째 강의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이가 없을 김소월 시인이었다. 김소월 시인은 이북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났고 광산을 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소년시절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가정 형편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과 할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운에 그 많은 불후의 시를 써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세상빛을 못 보고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져 33세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월 시인이 세상을 더 살다가 가셨다면 얼마나 주옥같은 시들이 나왔을까, 못내 아프고 슬픈 일이다. 가장 쉽게 익히고 우리들 마음의 위로가 되는 소월시를 나는 좋아한다.
내 어린 소녀 시절은 외롭고 힘겨운 세월을 살아내는 시대였다.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자취를 하며 독립하고 살아갈 때 내 외로움의 위로는 소월 시를 읽는 일이었다. 그나마 내 마음에는 문학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어 시어들이 마음을 다독여 주어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힘이 되어 주었다.
두 번째는 정지용 시인 편이었다. 정지용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시는 '향수'다. 이 시는 노래로 널리 알려졌고, 십 대인 열두 살에 결혼하고 서울에서 공부할 때 고향 집에 두고 온 아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썼다고 한다. 그 가사 말이 어찌나 애틋하고 서정적인지, 다시 읽어도 명시라는 느낌이다.
1929년 도쿄 유학을 갔다가 관동대지진으로 학교가 불타 어쩔 수 없이 귀국해 휘문고 교사를 했다. 시인은 수재였고 훗날에는 이화여대 교수까지 했다. 교육에 열정적이었고 시인을 발굴해 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윤동주, 이상도, 시인을 발굴해 시집을 내도록 했고, 조지훈, 박목월 등 많은 시인들과 교류를 하며 문학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낸 분이기도 하다.
다음 강의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를 쓰신 김영랑 시인 편이었다. 김영랑 시인은 전라남도 강진의 오 백석지기 부잣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한 환경 때문인지 13세에 두 살 더 많은 여자와 결혼하고 일 년 같이 살다가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간다. 그 시기에 부인과 사별하고 2년 후 재혼을 한다. 영랑 시인의 시는 말 맛이 살아있다. 영랑 시인의 표현은 매우 매력적이다.
육사 이원록은 우리나라 유교의 본산지나 다름없는 안동 도산 서원 출신이다. 그의 대표 시는 '청포도' 시다. 이육사란 이름은 감옥에 있을 때 죄수 번호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는 늘 나라 걱정을 하는 독립투사였다. 이번 시 강의를 듣고 서야 모르는 걸 많이 알게 됐다. 내가 무얼 하고 살았는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이육사 시인은 감옥을 무려 17차례나 채옥, 투옥했던 사람이다. 독립을 위해 한번 죽고자 했던 마음 가짐은 그의 '절정'이란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문화를 지키려는 분투가 있었다. 온몸으로 자신의 생과 시대를 헤쳐 나가려 했던 그 시대의 젊은 시인들이었다.
시는 눈과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시 쓰기, 시 읽기, 예술 창작은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 만든 영혼의 울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려운 시대를 걸어왔던 근대시인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어느 날은 시인의 깊이 있는 말씀에 소름이 올라온 적도 있고 공부하는 것이 이리 행복한 것이구나, 하고 혼자서 기뻐한 적도 있다.
김사인 시인 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먼 길 마다하시지 않고 찾아와 주신 봄날의 산책 책방을 말 그대로 봄날이었다. 강의하는 장소가 비좁아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강의를 들었지만 불편함 보다는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곁에 모르는 분과도 더 친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늦은 나이에 시를 알아가고 시의 세계에 마음을 적시고 살 수 있어 이 순간들이 벅차고 행복하다.
시대를 거쳐간 시인들의 강의를 듣고 우리 삶의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