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님의 강의를 듣고
목련 꽃이 화사하게 피어 향기를 날리는 봄밤이다. 나는 도종환 시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한길문고을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다. 봄밤의 공기는 여느 계절과 다른 향기롭고 포근포근한 느낌이 있어 좋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처럼 배움과 문학이란 장르에 마음을 주고 사는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서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지금을 살아 내는 힘이 문학의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나를 발견하면서 위로받는 건 아닌지. 그중에 시라는 감성의 세계는 늘 나를 어둠에서 밝음으로 세워주는 힘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시가 어떻게 나를 찾아왔나, 나는 시인도 아니며 시를 쓰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시란 감성이 마법처럼 나를 살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삶에서 메말라 가는 나의 감성에 촉촉이 비를 내려 주는 것이 시가 되듯.
도종환 시인은 강의 중에 시가 찾아온 계기를 말한다.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 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을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나의 문학은 가족의 해체에서 출발하였다
나의 문학은 가난에서 싹이 텄다.
나의 문학은 좌절에서 시작하였다.
나의 문학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렸다.
나의 문학은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문학은 버림받음에서 지속되었다.
나의 문학은 아프고 병든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외로움과 가난과 좌절과 억압과 상실과 아픔이 없었다면
나의 문학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들에 감사한다.
하나하나가 축복이었다. 좌절과 상실과 고통과 시련이 없었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내시에 절한다.
절뚝거리며 나를 따라온 시가 있어
나도 여기까지 왔다.
도종환 시인의 시선집 <담쟁이> 서문 중에서
시인의 말씀이 마음으로 느껴져 공감이 간다. 시란 우리 삶의 영혼을 울려주는 진솔한 언어의 마술이다.
시 한 편이 어느 누구의 삶을 통째로 바뀌기도 하고 또는 위로를 받고 이 험난한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는 힘을 얻기도 한다. 어쩌면 영혼을 울려주는 마술 같은 힘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시인들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 삶의 여정을 거쳐오면서 자기만의 고독하고 아픈 내면의 세계에서 시란 귀한우리 영혼을 울리는 언어를 건져 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거의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모자람, 결핍. 인내, 성실, 가난 지독한 외로움과의 생은 언제나 마음을 건드리는 문학의 씨앗들이 나의 마음 안에서 자랐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는 어려서 그러니까 십 대인 열일곱 살에 부모님의 곁은 떠나 독립해서 살아야 했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세상과 단절된듯한 고독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슴 안에 가득해서 늘 외롭고 힘겹고 아프면서 10대를 보냈다. 삶이란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그 시절은 그나마 소월 시집을 읽으며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었던 그날들, 내 외로웠던 시기가 지금의 나를 이토록 문학의 세계로 이끌어 준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추론해 본다.
외롭고 힘겨웠던 소녀시절, 나는 모든 사물에게 말을 걸며 나와 대화하는 것이 위안이었다. 삶 가운데 만나는 모든 상황 주변의 사물, 자연에서 만나는 모든 자연물. 그러한 것들이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어떤 날은 낙서를 하듯 글을 끄적인 날도 있었고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며 노는 시간이 나를 채워주는 시간들이었다.
홀로 세상 속에서 살아 내야 하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과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고 환경도 미비했다. 우리 시대는 도서관도 서점도 거의 없었다. 책이 귀한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어머니의 여린 마음과 감성을 닮은 것 같다. 그게 어쩌면 유산인지 모른다. 어머니 가신지 10년이 다 되어서야 그걸 알다니...
라일락 도종환
라일락은 왜 거기 있을까
사월이 간절하게 불러서
거기 있다.
너는 왜 거기 있는가
나는 도종환 시인의 강의를 듣고서야 그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 세상.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꽃은 어디에 피어 있느냐가 아니라 아름답게 피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 어머니에게 여린 마음의 씨앗을 물려받아 야생화만 보아도 마음이 순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선해지던 것, 스무 살에 니체를 알게 된 것, 좌절과 자학이 질펀하던 시절에 사르트르와 키르케 고리를 만난 것, 빈곤한 날들의 끝에 톨스토이를 좋아하게 된 것, 변방의 쑥부쟁이처럼 살았지만 의롭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인생을 흠모하게 된 것, 시골 학교에서 선생으로 오래 일했던 것 그것도 잘한 일의 목록에 들어가야 할 듯싶다.> 도종환 시인님의 강의 중
격렬한 고통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탄식과 비명이 입술을 빠져나올 때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는 불행한 사람이 시인이다. - 키에르케고르 < 이것이냐 저것이냐>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말들을 들으며 나는 다시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우연이 여기 있는 것일까? 우연이란 익명을 남긴 신의 지문이다." 오 오, 우연이 아닌 신의 지문이 지금 내가 서 있는 나의 자리란 말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말에 공감이 간다. 내 삶의 여정도 남편과 자녀들과의 인연도 내 삶의 전반이 우연이란 익명으로 남긴 신의 지문이 있어서 일 것 같다.
우리는 우연이 여기 있는 것일까?
"자기 인생을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하지 마라 차분히 생각하고 살펴보면 거기 신의 손길이 스친 흔적이 지문처럼 남아있다." 도종환 시인의 강의를 듣고서야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축복 안에 살고 있는지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 주변을 들러 싸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다.
시심에 가까워지기 위해 시인님의 새로 출간한 '고요로 가야겠다'는 시집을 사고
도종환 시인에게 사인을 받았다. 고요로 가기 위한 준비다. 80이란 나이가 남고서야 지금의
내 삶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