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 제사상에 진달래 화전 올리기

시아버님 제사상에 매년 진달래 화전을 올립니다

by 이숙자

어제는 시아버님 기일이었다. 아침부터 서둘러 큰집으로 향한다. 큰댁 형님과 시숙이 지난해 세상 뜨시고 조카며느리 혼자서 제사 준비를 하느라 동동거릴 일이 안쓰러워 마음 먼저 바쁘다. 아무도 살지 않는 큰집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다. 형님과 시숙님이 계시지 않은 빈집, 이런 날이 이 처럼 일찍 다가올지 상상도 못 했다.


시골길은 달리는데 어느덧 벚꽃이 만발했다. 청명이 지난 봄날, 지천으로 피어 나는 꽃들의 함성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 곳에 피어 있는 꽃들과 인사를 먼저 할까?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형국이다. 누군가 빨리 와 달라고 소리쳐 부르는 사람도 없을 진데 꽃들은 신기하게도 정확히 우주의 질서에 의해 자기만의 빛깔과 모습으로 대지위에 마술 부리듯 피워낸다.


누가 정해 놓은 우주의 질서인지, 아무 흔적도 없이 빈 공간의 흙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신비롭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예전 젊어 바쁘게 살아갈 때는 몰랐다. 그냥 계절 따라 피고 지는 자연의 이치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당연이란 말은 놀라운 신비감이 없다. 감동과 고마움도 없다는 사실을 나이 든 지금 뒤늦게야 알았다.


세상을 살 만큼 살고 서야 세상과 마주 하는 모든 것이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놀랍다. 작은 일에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밀려와 눈시울을 적시는 날이 많다. 모든 것은 자기가 느끼고 경험을 한 후에야 알게 되면서 겸손을 배운다.


큰집에 도착해 맨 먼저 집 앞 텃밭과 화단부터 눈여겨 살펴본다. 주인 없는 텃밭은 농작물 대신 잡초만 무성하다. 시숙님 계실 때는 마늘이며 고구마, 상추, 깻잎까지 부족함 없이 챙겨 주시던 일, 그 손길이 이제야 고맙고 애달프다. 같이 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먹먹한 내 그리움은 언제 지워질지...



큰집 텃밭에서 만난 야생화들

텃밭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풀만 무성하다. 광대나물, 개불알 꽃, 하얀 작은 별꽃들이

밭 가운데 무리 지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피어있다. 텃밭 주인이 바뀐 듯하다. 예전에는 작아서 잘 보이지 않던 꽃들이다.

누군가 눈길도 주지 않아도 꽃들은 피어나고 때가 되면 진다.


우리 인간의 삶도 꽃처럼 자연스럽게 생성을 하고 때가 되면 소멸을 할 것이다


결혼하고 58년째 시댁 제사를 지내왔다. 시댁은 종손댁이었다. 형님과 매번 제사를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일을 분업했다. 나는 부침개와 나물 담당이었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일을 도와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참 신기하게도 한 번도 일이 싫다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동서 셋이 원만한 성격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내 일이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에 생각이 나서 "진달래 꽃 피었나?" 하고 궁금해 조카에게 물어보니 "진달래 피었던 데요." 그 말을 듣고 바구니를 들고 큰집 뒷곁 산으로 올라가니 진달래 꽃이 피어 있어 따왔다. 지난해 보고 다시 찾아온 진달래 꽃,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수술을 제거하고 광대나물 꽃대도 끊어 화전을 부쳤는데 역시 화전을 진달래 화전이 예뻤다. 광대나물 꽃으로 부친 화전을 몇 개만 부치고 말았다.


화전을 제사상에 올려놓으니 다른 때 보다 진달래 화전이 올라간 제사상을 더 화사하고 보기 좋았다. 매년 봄이 오면 시아버님 제사상에 화전을 올리는 것도 내 몫이다. 감사하게도 제사 날과 진달래 피는 시기가 같아 화전을 부쳐 제사상에 올릴 수 없어 기쁨이 배가 된다.


인생의 과정은 연속일 뿐 결말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의 삶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 즐기는 일이 현명하다. 봄은 축복과 희망의 계절이다. 내 주변 작은 것에 마음을 주고 행복을 줍는 나는 놀거리가 많은 봄날은 나만의 놀이가 많아 축제장처럼 바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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