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람이 많은 항구도시 군산이다. 이곳은 봄이오면 유난히 바람이 많고 겨울 추위가 쉽게 물러가지를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봄이 오는가 보다 생각하면 어느덧 여름이 오게 된다. 아랫녘 남쪽에서는 진즉부터 벚꽃, 진달래, 개나리 많은 꽃소식들이 얼마 전부터 전해 오고 있다.
나는 아직 벚꽃도 진달래도 핀 꽃을 보지 못했다. 브런치에 들어가면 여러 작가님들 꽃소식에 마음이 환해진다. 봄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온다.
어제는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은파 호수 공원 산책을갔다. 우리가 즐겨 다니는 산책 코스는 월명공원과 호수가 있는 은파공원이다. 산책코스는 나름 다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봄이 오면 나는 은파호수 산책길을 더 좋아한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물오리를 바라보는 모습도 좋다.그 모든 풍경들은 마음이 순해지고 한없이 평화롭다.
무엇보다도 흙길을 밟으며 걷는 발걸음은 포슬포슬하고 푸석한 흙의 감촉이 좋다. 더불어 나를 반기는 것은 길을 걸을 때 보이는 주변풍경이다. 길옆에는 작은 야생화와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 어쩌면 누가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자기만의 생을 살아가는지, 그들에게서 나는 생명의 존엄을,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도 오로지 자기가 해야 할 몫을 하면서 묵묵히 할 일을 다 하고 살아내는 꽃들에게 겸손과 침묵을 배운다.
야생화 꽃들은 사람의 삶과는 다르다. 소리 없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답게 살다가 생을 마무리하며, 돌고 도는 삶, 생을 윤회하듯 사는 듯하다. 꽃은 다음 해에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다시 피워 낸다. 그 신비에 반가워 나는 꽃과 눈을 맞추며 사진을 찍고 꽃에게 소근 거리며 말을 걸어 본다. '이 조그만한 꽃을 어찌피웠을까' 놀랍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삶의 번거로움에서 피하고 마음이 한가롭게 지내고 싶다. 밖의 소란한 세상 일에 관심이 줄어든다. 복잡한 일에 신경 쓸 기운이 없다. 계절을 즐기듯 자연과의 만남이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사람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 한 줌의 흙이 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 속에 있을 때 평온해지는 이유는 자연으로의 회귀가 아닌지...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와 볼에 스치는 바람도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호숫가 버드나무 가지에도 새순이 올라오고, 걷고 있는 옆 산 자락의 찔레나무에도 초록의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죽은 듯한 빈 가지에는 꽃망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들이 봄이 왔다고 합창을 하는 듯 하다.
군산 은파 호수에서만난 봄 풍경들
버드나무 가지 새순과 목련 꽃
나는 봄이 오면 생명이 움트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있음이 축복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연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나이 들면 내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소박한 마음이다. 곧 있으면 많은 꽃들이 더 많이 피어 날 것이다. 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축복처럼 자연의 생명을 선물한다.
말이 없어도 곁에 있는 남편이 커다란 위안이다. " 여보, 이 야생화 좀 보아요? 이 조그만 꽃이 피었네요. 아, 목련꽃도 피었네! 감탄사 한마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사라진다. 내 말에 누군가 호응해 주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만나야 할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줄어든다. 곁에 만나던 지인들도 하나 둘 내 곁은 떠난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과 벗하고 산다.
봄은 생명력이 넘치고 희망을 안겨 주는 계절이다. 봄은 젊음이고 활력이다. 봄은 짧게 어느 순간 훅 지나간다. 나는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 찬란한 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