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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Oct 15. 2019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천안 선운 정  가을 여행

                                                                                                                                                                                                                                                                                                                                                                                                               

 

젊어서는 몸이 친구였는데 나이 드니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고  반란을 일으킨다. 오랜 세월을  많이 사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허리가 아프니 움직이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일 년이면 두 번씩 만나는 천안 친구 선운 정 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찌해야 하나, 신경이 쓰인다.   친구들에게   전화 자꾸 오고 심란한 마음이 더 밀려온다.  만나자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조금 힘이 들어도 가야겠구나  하 마음이 살짝 기울어져  버스에 몸을  싣고  천안으로  달려간다.


이곳에 모이는  인연은 우리가 20대 전후 직장에서   만나  어려웠던  시절은 같이 살아온 관계이다. 결혼 후 흩어졌으나 10년 전 다시 찾아 모임을 해 오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이기 때문에 천안 터미널이 집결지이다. 대략 오전 11시 전후로  만난다.


만나면 반가워서 " 별일 없이 사니 이렇게 만나는구나"라고 말을 한다.  지난번엔  " 잘 지냈어?"   했던 말이  바꾸어졌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무거운 짐을  택시에 싣고  시골 소정리 선운 정을 향하여  삼십 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이다.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일도 아니었는데 몸이  불편하게 되니 장 보는 일도 짐을 들고 다니는 일도  힘이 든다.


철마다 변화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올봄에는   겸례언니는  선운 정 물맛 좋다고 배낭에  생수를 담아  서울까지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가져가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실버타운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번에 못 만나는구나 생각했는데,  인천 실버타운에서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해서 지하철 몇 번 걸아 타고  천안까지 온 것이다.   다리가 아파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몇 개월만 이렇게 달라다니,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시려 온다.  나이 들어 찾아오는 몸에 변화는 진리가 거늘  누가 막으랴,



전주에서 온 똑순이 회장 언니도 지팡이를   의지하고,  걸음을 걷기조차 불편한데  모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하나,  의아해진다.  지난 세월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날 때  고향 같은 향수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두가 먼길 마다하지  모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을  같이 보냈던  관계라서   더 소중하다.  지난날  살아온 세월에 회한을 이야기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위로를 받는다,   많은 시간을 같이한  세대라는 동질감이 가슴속 허한 마음을 가득 채워 주기도 한다.  자식들에게도  말 못 할  숨은 이야기들,  그 사연, 사연들이 곧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연령별,  세대마다 공감이  다르다.   이유는  세월이다. 세월을 같이한 사람들만이 느끼는 깊이와  끈끈한 정이  있다.  살면서 그러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가끔이면 주변들을  둘러본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내 온 삶을 가족 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 운정에서 만나는 인연들도 세월이다.   말없이  보내는 시간도   흉 허물이 없고 편하다. 서로 걱정하고 궁금하고 안부를 묻고 살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으랴,   선 운정은  찾아오는 우리가  내 집처럼  기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휴식 같은   친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선운  고향 같은 곳이며,   언제나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만나면 먹어야 하고  일상적인 생활이 이어진다.  요리를 하는 나에겐,  음식을  만들어 주면 맛있다고, 칭찬해 주니 어깨가 으쓱 해진다.  정말 요리사 라도 된 듯 기쁨이 충만 해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 한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서로의 일을 나누어  자기 몫을 잘한다.   모두 밥을 먹으면서 "  너 젊어서 음식점을 했으면  성공했을 것 같다"라는 말들을 한다.   푸하하, 음식점 사장?  음식점은  내 꿈이 아니 었지요.

서점이면 몰라도,  난 젊어선 책 읽기를 좋아했다.


선운 정 주변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많다. 새로 돋아난  쓴   캐다가  김치를 담갔더니 쌉싸름하면서 맛이 있다. 텃밭에 고구마 순도 따고  껍질을 벗기며 지난 옛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나이도 잊은 체  첫사랑 이야기에 몰두한다.  " 만나 보고 싶다, 아니다 추억으로 묻어 두는 게 좋다"  의견이 갈린다.  


밭에서 막 따온 호박에 갈치를 넣고 고추장에 진간장 조금 넣어  고춧가루 양념하여 찌개를 끓이니  엄청 맛있다. 이런 맛이 시골 사는 기쁨인 듯하다. 씀바귀 캐고, 다듬어서,  김치를 금방   담가서 모두 조금씩 나누어  주니  내가 마치 음식점 사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더니  할 일이 많다.


친구 집 뒷산 올라가는 길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줍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주워온 밤을 삶아 먹으며 차 한잔 나누는 일도 함께하니 소소한 일상이다.   집에서 못 느끼는 즐거운 시간이다.  여자들 웃음소리가  집안을 꽉 채운다. 집은 사람이 머무를 때 온기가 가득하다.  나는 차를 좋아해서  누구를 만나던  맛있는  차를  우려낸다.  쌀쌀한 가을에는 발효 차인 철관음이 제맛을  낸다.  따끈하게  차 한잔 마시면 몸에 온기가 돌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문제는  삼박 사일  같이 지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사람은 가까울수록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나이 들어가며 명심해야 할 일은  내가 할 일은  내가 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말조심하여  상처를  주지 않아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특히 내 말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다.


내가 제일 인척 하는 주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해 내고 배려하는 조연이 더 빛이 난다. 매너 없이 미운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모두가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를 염원 본다.


 집 앞   오솔길 따라 오르면. 넓은 잔디관장에 산소가 있다.  언덕에   피어있는 노란 산국화  한 움큼 꺾어와   아 놓으면 향이 참 좋다.  아~~  가을이구나!  가을. 가을은  인생의 황혼을 노래하는 듯  쓸쓸함이 묻어 난다.  건들 부는 바람 까지도,


 가을 햇볕이  쏟아지는  거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상념에  젖어 본다.


두꺼비가 고요한 절간 앞마당을 건너가듯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깊은 우물로 낙화하듯이, 사람이 만나면 마음에 향기 사랑의 향기를  가슴 가득 안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20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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