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 무얼 먹을까 밥 걱정을 안 하니 꼭 여행 온 느낌이다. 코로나가 오면서 맨날 삼시 세끼 집밥만 물리게 해 먹고 살아왔다. 더욱이 셋째 딸네 가족과 일 년을 사는 동안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이젠 때때로 밥해 먹는 일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내손으로 밥해 먹을 때가 행복한 시간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 말이 맞긴 하다. 그렇지 않으면 요양원뿐이 갈 곳이 없다.
항상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니 색 다르다. 차속에 앉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서울의 모습을 보니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일은 단순하다. 가고 싶은 곳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서 맛있는 것 먹고 자유롭게 살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더욱이 건강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시간과 행동에 제약을 받고 살다 보니 예전 소소했던 일상에 대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서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고 귀하다. 코로나가 오면서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일들이 답답해 많은 사람들은 우울감을 하소연한다. 내 주변 사람들도많이 그렇게 말한다.
사람은 혼자서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혼자노는 데 익숙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이 맞지 않는 대화를 할 때면 흥미가 없다. 그렇다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온 삶을 통찰하고 어뗳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이 많아졌다.
친구 딸 결혼식 때문에 서울 올라와서 딸들 집을 투어를 한다. 언제 서울을 올라갈까, 숙제처럼 미루어 왔는데, 이번에 서울 올라 온 일은 잘한 일이다. 이제 백신도 맞고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전국 확진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답답하다. 언제 마스크를 벗고 자유로운 생활을 할지 도무지 일 수가 없다.
날이 추운 겨울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참을만했지만 날이 따뜻해지면서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곧 있으면 백신도 두 번째 맞게 된다. 세상사는 일은 언젠 가는 끝이 난다. 우리는 담담히 기다리는 일뿐이다.
텃밭일을 마치고 둘째 딸과 사위는 우리와 함께 막내딸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막내 사위는 얼마 전에 창덕궁 앞 돈화문 거리에 아담한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밤에만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나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가족이라도 예약을 안 하면 못 간다 하니 잘하는 일이다. 손님과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쉬는 날이지만 우리가 온다고 가계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창덕궁 바로 앞 돈화문 거리에 있는 곳이다. 요즈음 사람들 걷는 거리라서 차도 많지 않고 거리가 넓고 조용하다. 가계는 5층이었다. 밖에는 간판도 없다. 5층 올라가니 문 앞에 조그만 이름이 간결하게 붙어 있다. 깔끔하고 예쁘다. " 왜 밖에 간판이 없니" 하고 물어보니 " 다 알아서 찾아와" 이런 모습이 요즈음 추세라나. 참 젊은이들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래전 뉴욕을 갔을 때 식당 간판이 있는 걸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글씨로 세련된 간판이 있어 좋은 인상은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도 좀 그랬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우리나라도 달라지나 보다. 가계가 5층이라서 창덕궁도 조금 보이고 뒤쪽은 남산타워도 보이는 곳이라서 전망이 좋았다. 특히 밤에 전망과 분위기가 좋아 이곳에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은 맛있는 것도 먹고 와인도 마시고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긴다고 하니 젊음이 부럽기는 하다.
가계 안 와인 코너
젊은 사람들 문화는 나이 든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 오랜 세월 어려운 시절, 힘들게 살아온 습관과 검소한 생활이 길들여져서 그렇까... 나는 이제는 변화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싶다. 삶을 좀 즐기면서 살았으면 하고 희망해 보지만 쉽지 않다. 남편이 예전보다는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나는 막내 사위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면서 안쓰럽다. 물론 본인이 즐겨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밥벌이를 하기 위해 하는 일은 노동이다. 막내 사위는 항상 말을 툭툭 던져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 사람 성향이 그랬다. 막내 사위는 인정도 많다. 가족이 되면은 모든 점이 예쁘게 보이며 감싸 안아 주고 싶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다.
우리를 만나면 무얼 만들어 맛있게 먹도록 해 줄까 신경을 쓴다. 나는 딸이 넷이지만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준 사람은 막내 사위뿐이다. 서울에서 미역국을 끓이고 갈비찜을 만들어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 군산까지 가지고 내려온 적이 있다. 그날은 정말 감동이었다. 결혼하고 두 번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지 못한 생일을 막내 사위에게 받았다.
지금은 가계 때문에 바빠서 못하지만 2번 해 준걸로 충분하다. 막내는 보기만 해도 애달프다. 늦은 나이 낳은 딸, 부모가 나이가 들어 그런 것 같다. 앞으로 보고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럴 것 같다. 무엇이던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게 막내들이다.
점심을 먹고 아래층 커피숍에서 커피까지 사들고 옥상에 올라가서 창덕궁 근방 전경을 바라보니 주변 한옥이 고즈넉하고 예쁘다. 탁 트인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니 커피맛도 좋다. 여름밤의 낭만은 이 옥상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맥주 한 캔 가지고 멍 때리기 좋은 장소란다. 사람은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루에 있었던 잡다한 생각을 날려 보내는 곳도 옥상이라고 사위는 말한다.
막내딸 가계 건물 5층 창덕궁이 보이는 돈화 문 거리
예전 조선시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거리는 짧은 거리지만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오밀조밀 각양각색의 역사가 스며 있는 거리라고 한다. 창덕궁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종묘의 기와 담장길을 따라 걷는 순라 길이 있다. 조선 시대 순라 꾼이 궁을 지키고 도둑이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순라를 돌았던 길이라 한다.
우리는 내려가서 순라 길을 걸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걷기 좋아하는 핫플레이스라고 하니 앞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지 궁금하다. 종묘 한옥 담장이 운치 있고 고즈넉한 한옥카페들의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연인들이 한옥 앞 작은 튓마루에 앉아 차와 디저트를 먹으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순라 길 종묘 담장
참 젊음은 좋다. 나는 어느덧 나이 들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을 가야 할지 망설여지니 때로는 내 모습이 차량 맞다. 나는 젊어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싫다. 지금 내 나이에서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고 살면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후회 없기를 바라면서. 나 답게 살아가고 싶다.
순라 길 한옥 카페 에쁜 가계
순라 길 이모저모
이제는 모두 헤어져야 할 시간 막내딸이 어버이 날이었다고 손 편지를 준다. 손편지는 언제나 정겹다. 막내는 역시 막내다. 3박 4일 딸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아쉽지만 헤어져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우리 부부를 둘째 딸네가 터미널에 까지데려다주고 돌아갔다.
가족이란 서로의 힘이 되는 관계라서 고맙다. 우리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다짐을 해 보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일이다. 딸들은 가는 곳마다 적당히 알아서 자기들 역할을 나누어서 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조금은 민망한 생각이 든다. 사유와 공감이 아닌 일기 같은 글을 왜 나는 쓰는가,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의 여정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거라고 위안을 가져본다.
'여행이란 떠났던 곳을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며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 이란 정호승 시인의 말이 맞다. 며칠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그 또한 좋다. 편하기는 내가 사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