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가 생의 정점인 열매를 맺고 꽃이 진다. 사람마다 공평한 생의 한 자락, 꽃이 필 때가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도 어쩌면 꽃과 다름없는 삶이 아닐는지, 여자들은 젊어서 20대 아름다운 모습일 때는 꽃각시 같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자주 듣는다. 그만큼 싱그럽고 예쁘다는 표현이다. 사람의 일생은 '화무는 십일 홍이요 날도 차면 기운다'는 옛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니다.
며칠 전 전주에 사는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큰집 형님이 많이 아프시다고 하네요."라는 말을 한다. 코로나가 온 후로 큰집을 가지를 않았다.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풀어지지 않아 조심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명절에 산소를 갈 때도 큰집을 가지 못하고 큰집을 돌아서 산소에만 다녀오고 제사가 돌아와도 큰집에 못 갔다.
결혼 54년이 넘는 동안 이런 일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 형제들은 오 형제며 남편은 둘째 아들이다. 누나 두 분 중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분은 살아계시지만 나이 드시니 거의 왕래를 안 하신다. 제사를 마치 종교의식처럼 정성껏 모셔온 집안인데 코로나가 오면서 달라진 삶의 일상들이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펐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은 우리 삶의 질서를 바꾸어 버렸다.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와도 큰집에 가지를 못하고 가족들과 만남이 없어지니 정서적으로 허전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오는 공허함일 것이다. 54년을 이어온 집안 풍습이다. 시댁은 가족과 형제가 화목하다. 만나면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었다. 일도 서로 분담해서 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오면서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가족들과 만남도 없고 사는 게 갑자기 쓸쓸하고 마음이 허전 해온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마음에 기운을 얻고 살아왔던 일들이 사라지고 사람 사는 일이 외롭다.
결혼 후 반세기를 그렇게 살아왔는데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우리 삶 자체를 온통 바꾸어 버렸다. 현대 문명이 빠르게 변하듯 온 가족이 모여 서로의 살아가는 삶을 나누는 정서도 사라졌다. 일도 서로 분담해서 자기 몫만 하기 때문에 제사로 불편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서로룰 배려하며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는 언제나 훈훈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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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전화를 받고 오랫 만에 과일과 반찬을 사 가지고 큰집을 갔다. 코로나가 오고 나서 처음 와 보는 큰집이다. 일 년이 훨씬 넘었다. 지금은 겨울이 아닌 여름인데 집은 조용하고 썰렁했다. 항상 온기가 넘치던 큰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조용하다. 집안에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사람이 없을 리가 없는데...
나는 "형님 저 왔어요"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방 안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고 형님은 누워있다가 우리가 온 걸 알고 겨우 일어나신다. 형님은 기운 없는 소리로 " 왔어" 하신다. 한 동안 못 보았던 형님은 다른 사람 모습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깜짝 놀랐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완전 환자 모습이다. 얼굴에는 피곤한 모습이 가득하다. "형님, 어디가 얼마나 아프세요?" 하고 물으니 " 몰라 다 아파 어지럽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 형님 이러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병원에 입원하셔야지요."라고 말하니 " 내가 안 죽고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하신다. 이일을 어쩌랴.
코로나는 우리 생활 속으로 훅 치고 들어와 살아온 모든 삶의 질서를 바꾸어 버렸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끔 전화만 했지만, 이 토록 몸이 좋지 않은 줄을 몰랐다. 큰집에 오지 않은 것은 나이 든 우리가 혹여라도 코로나에 감염되면 고생을 하고 주변에 어떤 영향이 올지 두렵기 때문에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야 왔다.
사람이 사는 일은 사람과 만나고 서로가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살아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코로나가 오면서 모든 삶이 정지된 듯 삶이 엉망이 되었다. 가야 할 곳도 여러 면에서 행동의 제약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힘든 나날이었다. 나이 들어 집에서도 자기만의 소일거리와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함이 절실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는 형님에게도 변화가 왔다. 형님은 원래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기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연세가 82세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멋 내기를 좋아해서 옷도 예쁜 옷을 잘 입으신다. 허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목욕탕을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목욕탕에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하시며 지내왔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사람의 발을 묶어 놓고 목욕탕도 갈 수가 없었다. 특히 목욕탕에서 확진자가 잘 나왔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자녀들과 가족들도 찾지 않은 집안은 감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밖에 외출이 줄어들고 몸은 아파 병원을 오고 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외로움이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몸도 안 좋고 그리고 기억력도 없다고 말을 한다. 예전 형님은 집안 대소사 일을 다 기억하시고 가족들 생일, 제사 많은 걸 다 기억하는 총명한 분이었다. 이렇게 변하다니... 형님의 지난 삶을 다 알고 있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우선 건강이지만 다음은 존재의 의미다.
가족들의 왕래가 줄어들고 두 노부부만 사는 집은 썰렁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제사 지내는 것이 힘은 들지만 결혼 후 여태껏 모셔 왔던 조상들에 대한 제사는 종부인 본인은 자부심이었다. 가족들에게 항상 존경을 받아왔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몸도 정신도 모두가 정체성을 읽어버린 형님은 살아가는 의미가 퇴색되고 사는 재미를 읽어버린 것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종갓집 종부로써 열심히 살아온 삶아온 형님의 삶이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형님 모습을 보는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파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누구보다 음식 솜씨도 좋고 살림도 깨끗이 잘하는 우리 형님은 어디로 가셨나. 나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형님의 인생 스토리를 나는 다 알고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생의 정점인 꽃에서 이제는 꽃이 시들어 간다. 형님 꽃이...
주부가 손으로 만지지 않는 살림은 시들하고 온기가 없다. 내가 부엌에서 무엇을 찾는데 형님이 따라 나오며 살림살이 그릇들을 보며 "이제는 다 필요 없는 것들이네"라고 말을 한다. 잘 정돈된 그릇들을 보며 나는 목이 멘다. 곧 있으면 다가 올 내 삶의 끝자락을 보는 듯도 해서다.
인생의 정점이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쓸쓸히 시들어 가는 삶을 내려다보는 내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인생은 유한하지 않고 언제 가는 막을 내리지만 지금 형님에게 다가오는 삶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쓸쓸해진다.
내 나이도 보통 나이는 아니다. 이제는 언제 세상과 이별을 해도 후회 없는 날들을 위해 주변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말이 맞다. 나그네로 왔다가 나그네로 떠난다. 한 송이 꽃으로 파었다가 열매를 맺고 한 송이 꽃으로 지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 근방 동네 맛집 막국수를 한 그릇 사드렸더니 맛있게 반절 조금 넘게 땀을 펄펄 흘르시며 잡수신다. 이틀 만에 처음 먹는 식사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먹지 못하면 금방 기운이 없어지는데 큰일이다. 입맛이 없어 못 드신다고 한다. 나는 "형님 뭐 드시고 싶어" 물어보니 찰밥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에는 찰 밥을 해다가 드려야겠다.
"형님 정신 차리시고 조금만 더 세상 속에서 살아보게요, "나는 혼잣말로 기원을 한다. 형님은 이 집안의 어머니요 빛이었다. 항상 다정하게 온 가족을 감싸 안고 살아오신 분이다. 형님, 곧 코로나도 끝날 것이고 우리 같이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한 세월 더 살아 보시게요. 아직은 형님과 이별할 때가 아니에요. 형님.